한국영화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공동경비구역 JSA'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살려 주세요. " "사내자식이 울긴." 훈련 중 낙오된 상태에서 지뢰를 밟은 한국군 병장 이수혁(이병헌)과 겁에 질린 채 꼼짝 못하고 서 있는 수혁을 발견한 북한군 전사 정우진(신하균)의 대화다.

긴장은 잠시.북한군 중사 오경필(송강호)은 수혁을 구하고 이후 이들은 초소에서 몰래 만나기 시작한다. 영화 속 지뢰는 제거되지만 현실에서 같은 일이 생기면 수혁은 물론 경필과 우진도 무사하기 어렵다. 지뢰란 게 대부분 밟는 즉시 터지고 폭발력 또한 엄청난 탓이다.

지뢰는 15세기 중국 명(明)나라 때 사용되기 시작,1차 세계대전 때 보편화됐다는 게 통설이다. 얼마나 많이 썼는지 2차대전 종료 후 반세기가 넘은 1996년까지 각국에 1억1000만개나 묻힌 걸로 추정됐다(유엔 & 국제적십자위원회).같은 해 제네바에서 열린 '비인도적 무기 금지 및 제한조약' 회의에서 23개국이 지뢰의 생산 · 사용 · 판매 금지를 선언했지만 딱히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아프리카 모잠비크 한 곳의 지뢰 매설지가 960만㎢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오죽하면 지뢰 탐지 및 제거에 쥐를 이용한다고도 할까. 쥐는 일사병에 강한데다 몸무게가 가벼워 지뢰를 터뜨리지 않고 없앤다는 것이다. 마리당 훈련비가 6000유로로 개의 30% 정도인 것도 지뢰 탐지쥐를 활용하는 이유로 전해진다.

지뢰가 무서운 건 일단 매설되면 찾기 힘들고 아무리 오래 돼도 터지는 데다 홍수 등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7월 말 북에서 흘러온 목함 지뢰가 폭발,낚시 갔던 민간인이 사망한 건 대표적인 예다.

6 · 25전쟁이 끝난지 57년이 지난 지금도 비무장지대 근처를 비롯 서울 · 부산 · 대구 · 경남 등 전국 곳곳에 지뢰가 남아있다고 한다. 군(軍)이 애써 제거했지만 찾지 못한 게 많다는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산사태가 나면 유실된 지뢰가 어디서 생명을 위협할지 모른다는 얘기다.

지뢰는 원래 방어 무기지만 때로 적이 아닌 자신을 위협하는 수도 잦다. 등산이나 낚시 가서 밟을 지뢰도 지뢰지만 살다 보면 스스로 묻은 지뢰에 당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노후를 위해 준비했다는 쪽방 투기로 낙마한 장관 내정자가 있거니와 누구든 공인(公人)이고자 하면 한때의 말과 행동이 지뢰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할 일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