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설문조사에서 기업 경영자들에게 최대 고민거리를 물었더니 '중 ·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신사업 창출'이란 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와 중국 인도 같은 후발국의 맹렬한 추격으로 요즘 기업하기 어렵다는 말도 참 많이 듣게 됩니다. 우리 기업들은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요. 어떤 아이디어로 신사업을 창출해서 '히든 마켓(hidden market)'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성분추출

히든 마켓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有)에서 새로운 유(有)를 창조하는 발상의 전환'속에서 신사업의 실마리를 찾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새 사업을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사업에 숨어 있는 1인치를 '히든 마켓'이라고 하는 것이죠.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는 것들을 재조합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으로,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막대한 투자 부담을 줄이면서 신제품 · 신사업을 창조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여러 방법 가운데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현상의 원리를 응용해서 새로운 제품,더 나아가 새로운 사업영역을 찾는 방법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그 방법으로는 성분 추출 · 원리 모사 · 직접 대체가 있는데,성분 추출은 생명체가 갖고 있는 어떤 특정 성분을 추출해서 이를 부가가치가 있는 제품으로 개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화석 자원의 고갈이 화두(話頭)가 되면서 세계 각국에서 에너지원(源)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식물에서 추출한 바이오연료가 주목받나 했더니 사탕수수 옥수수 같은 식용작물로 만들면서 식량가격 폭등이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죠.그래서 쓸모없는 잡목이나 볏짚,각종 잡초를 이용해서 만든 '목질계 에탄올'의 개발이 시급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물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결정적인 효소를 발견하지 못해 난항을 겪다가 역시 자연 성분 추출에서 답을 얻었습니다. 나무를 닥치는 대로 갉아먹어 해충 취급을 받는 흰개미에서 말이죠.흰개미의 소화기관에 존재하는 미생물이 1000여 종류의 나무를 거뜬히 분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고,만약 흰개미 뱃속에 들어있는 미생물을 성공적으로 배양할 수만 있다면 인류는 에너지 문제를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분 추출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각종 천연물질을 이용해서 인류에게 필요한 재화를 만들어내는 유용한 사업 창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인류에 의해 발굴된 생명자원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약 350만종에 달하는 생명자원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생명자원의 경제적인 잠재가치가 과연 얼마나 될지 짐작이 되시나요. 전문가들은 2012년 전 세계 생명자원의 시장 규모가 2조5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매력적인 히든 마켓이 아닐까요.

#원리모사

원리 모사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원리를 찾아내고,제품과 서비스에 적용시켜 기존과 차별화된 사업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유선형 첨단 선박의 폭과 길이 비율은 돌고래 상어 참치 같이 물속에서 날렵하게 수영할 수 있는 각종 어류의 생체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한국 수영의 간판스타인 박태환 선수가 착용해 한때 화제가 됐던 '패스트 스킨 프로(FS Pro)' 수영복이 상어표피의 돌기를 본떠 물속에서 저항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죠.

좀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는 16세기 초만 해도 비만 오면 홍수가 났다고 합니다. 당시 해부학자이자 수학자,발명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강물이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한 묘책을 심장의 판막구조에서 찾아냈습니다. 심방에서 내려온 혈액이 심실에서 온몸으로 분출될 때 심방으로 역류하지 않는 것은 심장판막이 중간에서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빈치는 이 원리를 강물에 적용했습니다. 강 중간에 판막과 같은 댐을 설치하면 물이 역류해서 범람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심장 판막구조는 다빈치만 활용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디자인 회사 아이디오(IDEO)는 사람의 심장판막 구조와 비슷한 물병 마개를 만들었습니다. 사용자가 빨면 중간 마개가 열려 물이 나오고,평상시에는 자동적으로 중간 마개가 닫히는 스포츠 전용 물병입니다. 이 물병은 이물질이 쉽게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빨아들이는 힘에 비례해서 물이 나오기 때문에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문제도 해결했습니다.

#직접 대체

마지막으로 직접 대체는 생명체 자체를 물리적으로 활용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실내 공기 정화에 식물을 활용하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식물에서 어떤 특정 성분을 추출하거나 체내의 공기정화 원리를 응용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 자체를 직접 활용하는 것입니다. 자연에서 생성된 천연물질을 인공적으로 제조하거나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렵다면 이미 존재하는 물질이나 원리를 완전히 새로운 곳에 적용해보는 것도 새로운 부가가치를 찾는 방법이 됩니다.

직접 대체의 또 다른 예로는 구더기가 있습니다. 더러운 곳에 사는 혐오스러운 곤충으로 여겨지던 구더기가 치료용 곤충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죠.구더기는 나폴레옹 시대부터 전쟁터에서 병사들의 외상 치료에 쓰이긴 했지만 1900년대 페니실린이 개발되면서 활용가치가 급감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가진 슈퍼 박테리아가 출현하면서 항생제의 대체요법으로 구더기가 다시 떠오른 것입니다.

구더기는 환부에서 썩거나 죽은 세포만 먹고 입에서 항생물질을 분비,생체 조직을 공격하는 박테리아를 죽입니다. 또 상처의 잔해물을 흡수해 환부의 회복을 촉진시킵니다. 따라서 상처 부위에는 살아 있는 세포만 남고,그 위에 구더기가 배출한 항생물질로 상처가 치료되는 1석2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괴사가 진행 중인 상처를 항생제로 치료할 경우 완치될 때까지 수개월이 걸리지만 구더기를 이용하면 보름 정도만 치료받으면 회복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현재 상처 한군데를 치료하는 구더기의 가격이 200달러를 넘어섰다고 하니 의료분야의 새로운 고부가 시장으로 주목할 만하지요. 더불어 거머리 같은 새로운 의료용 곤충을 찾으려는 시도가 다국적 제약회사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해충으로만 여겨졌던 곤충이 새로운 유망 사업으로 탈바꿈한 것은 그 곤충이 갖고 있는 특별한 능력을 그냥 보고 지나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자연물의 원리를 기존 제품과 사업에 적용해서 새로운 사업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김종현 CJ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서강대 경영학사,KAIST 경영정보학 석사,성균관대 경영학 박사 △한국종합기술금융,삼성경제연구소,CJ경영연구소 △저서 '히든마켓''새로운 업의 발견' synclare@hanmail.net






정리=이주영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연구원
ope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