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3일 오전 청와대에서 가진 대기업 총수와의 조찬간담회에서 강성 발언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재계가 한때 긴장 상태에 빠졌다.

발단은 오전 9시30분께 이 대통령이 "잘사는 사람 때문에 못사는 사람이 안 되는 게 있다.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안 되는 건 사실이다"고 말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집권 후반기 화두로 내세우며 친서민 · 중소기업 정책을 강조해온 터여서 재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재계는 즉각 여러 경로를 통해 청와대에 이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확인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청와대가 진화에 나선 것은 오후 3시.곳곳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추측이 이어지자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이 발언 내용을 뒤늦게 부인하고 나섰다.

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발언이 잘 들리지 않았는데 녹음을 들어보면 실제 발언은 '잘사는 사람 때문에 못사는 사람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기업 부분에 대해서는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홍상표 홍보수석비서관 등을 통해 이 대통령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안 되는 것도 아닌 게 사실이다'라는 취지였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첫 번째 문장은 이 대통령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바람에 잘못 소개되면서 발생한 오해였고,두 번째 문장은 이 대통령이 이중 부정의 문장을 잇따라 하다 보니 엉키면서 원래 의도와 다르게 발언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결국은 대기업을 비판한 게 아니었다는 해명이다.

첫 번째 발언과 두 번째 발언이 대구를 이룬다고 볼 때 청와대의 해명을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재계는 청와대가 사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기사가 나온 지 한참 지나서야 해명에 나섰다는 사실이 석연찮다는 반응이다. 대기업들이 현금을 쌓아 놓고도 투자를 꺼리고,중소기업에 불공정 관행을 일삼는다는 일부의 비판을 염두에 두고 이 대통령이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것이다.

간담회는 오전 7시30분부터 2시간 넘게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됐다는 후문이다. 이 대통령은 모두 발언과 마무리 발언을 빼곤 대기업 총수들의 의견을 듣는 데 치중했고,12명의 대기업 총수들은 돌아가면서 중소기업과 상생 및 동반 성장 구상을 내놨다.

이 대통령은 "세계 어느 나라 정부가 친기업적이 아닌 경우가 있나,공산주의 국가도 친기업적이며 그 점은 당연하다"며 격려성 발언도 했다. 자신은 기업 마인드를 갖고 있지 정치 마인드가 아니라는 말까지 했다. 공정 사회가 곧 사정 정국으로 연결되는 데 대해선 강하게 부인했다. 공정 사회라는 화두가 정략적 차원에서 나온 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재계는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미뤄볼 때 청와대의 해명이 사실인 것 같다면서도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홍영식/김수언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