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행업체 나인피플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주상복합단지 건설사업을 벌이기 위해 2008년 2월 NH투자증권에 투자의사를 타진했다. 나인피플은 NH투자증권의 요청으로 사업을 수행할 카작개발이라는 회사를 별도로 설립하고 이 회사를 통해 사업타당성 분석,현장실사 등을 마쳤다. 이에 NH투자증권도 80억원을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하는 내용의 투자확약서를 카작개발에 보냈다. NH투자증권은 그러나 이후 카작개발이 카자흐스탄 측과 토지 매매계약을 맺었는데도 투자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카자흐스탄 투자가 위험하다는 업계동향 보고가 나온데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카작개발은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1심에 이어 최근 2심에서도 "피고가 투자계약을 체결할 때까지 최대한 신중하게 조사할 필요성이 있었다"며 NH투자증권의 손을 들어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PF 등 부동산사업 대출분쟁이 법정을 달구고 있다. 금융사가 부동산 대출을 옥죄면서 대출을 받지 못한 기업들이 소송을 내는가 하면,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한 금융사도 법원을 찾는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지방자치단체 등 토지 공급자가 매매계약을 체결했다가 대출을 못 받아 돈을 제대로 내지 못한 토지 수분양 기업들과 벌이는 계약보증금 및 연체료 반환소송도 밀려들고 있다.


◆'대출 약속' LH에 무더기 소송

상업용지나 택지를 분양하면서 금융회사 대출을 약속했던 LH는 대출을 못 받거나 뒤늦게 받은 수분양 기업들에 집중 소송 타깃이 되고 있다. 법원 판결은 재판부마다 엇갈려 확정 판결 결과가 주목된다.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클라임개발과 캐널코아가 경기도 오산 세교지구 상업용지를 분양한 LH를 상대로 낸 연체료 반환 소송에서 "LH는 부당이득인 연체료 총 2억6000여만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LH는 2008년 "LH와 금융사들이 협약을 맺어 대출제도가 시행 중"이라며 세교지구 상업용지를 분양했고,이에 클라임개발은 49억여원,캐널코아는 110억여원짜리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금융사들이 금융위기를 이유로 대출을 거부해 클라임개발 등은 중도금을 연체,총 14억원가량의 연체료를 물자 소송을 냈다. 같은 법원은 그러나 인천 청라지구 상업용지를 분양받은 화산건설 등이 유사한 이유로 제기한 연체료 반환소송에서는 "화산건설 등이 대출을 받지 못할 경우 LH가 연체료 납부를 면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지난달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금융위기 고려해야"

대출을 못 받은 수분양 기업들이 아예 분양계약을 해제당하고 보증금을 몰취당해 법원을 찾기도 한다. 법원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한 판결이 나오고 있다. 서울남부지법은 자연과사람디앤씨가 인천 계양구를 상대로 낸 계약금 반환 소송에서 "계양구는 4억2000만여원을 지급하라"고 지난 6월 판결했다. 자연과사람디앤씨는 2008년 계양구로부터 동양지구 토지를 140억여원에 분양받기로 하고 계약보증금 14억여원을 냈다. 그러나 금융사들이 대출을 거부하자 납부기한까지 중도금과 잔금을 내지 못했고,이에 계양구는 계약을 해제하고 보증금을 몰취했다. 법원은 "계양구가 위약하는 경우에는 손해배상액을 정하지 않는 등 계약이 불공정했고 금융환경의 급격한 악화라는 외부 사정이 대출 불성사의 요인이었다"며 자연과사람디앤씨의 책임을 70%로 제한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