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본시장에서 상장폐지가 새로운 사기수법으로 등장해 관계기관을 긴장시키고 있다. 태양열,바이오 등 새로운 테마산업에 신기술을 보유한 벤처회사라고 선전해 일반투자자들의 자금을 끌어모은 뒤 달아나는 수법,비교적 잘 나가는 상장사를 사채를 동원해 인수한 뒤 회삿돈을 횡령하고 상장을 폐지시키는 수법 등이 전형적인 사기방법이다. 두 경우 모두 소액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이며,피해 또한 심각하다.

올 들어 퇴출당한 코스닥 기업 중 경영자의 횡령이나 배임에 의한 게 38%로 제일 많고,매출을 부풀리는 등 회계분식에 의해 퇴출당한 기업도 32%나 된다. 검찰과 금융당국은 코스닥 사기를 뿌리 뽑겠다고 공언하고 있고,증권거래소 관계자들도 배임,횡령,분식회계 등과 관련된 불건전 기업을 가려내기 위해 실질심사를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 명의 도둑을 열 명이 막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투자자들은 정부 관련기관에만 의지해서는 증권시장에서 자기 재산을 지키기 어렵다. 스스로 건전한 기업과 불건전한 기업을 가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기업에 관한 정보의 70%가 회계정보로 나타난다. 기업의 회계정보를 체계적으로 모아놓은 보고서를 재무제표라고 한다. 재무제표를 통해 기업의 재무상태를 이해하고 경영성적을 평가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투자자가 자본시장에 나설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다. 남의 말을 듣고 무조건 따라가지 않으려면 그 기업에 대해 재무상태의 건전성이나 경영성적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시장뿐만이 아니다. 그 사회가 건전하고 투명하려면 일반인들도 재무제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회계를 모르면 우리 경제사회의 중요한 일원인 기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정부기관을 비롯한 각종 공공기관들의 활동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는 회계를 대학의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경영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음악을 비롯 어느 전공이든 관계없이 모든 학생이 회계를 알아야 졸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관점에서 보면 전통적인 지식은 무엇을 말하고(what to say),어떻게 말해야 하는지(how to say)를 아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만,오늘날 지식이란 무엇을 해야 하고(what to do),어떻게 해야 하는가(how to do)를 아는 것으로 변했다고 했다. 이런 실용적 관점에서 보면 대학에서 영어와 더불어 회계를 필수과목으로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기업이나 정부기관을 비롯해 각종 조직의 경영성과나 재무상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기관의 책임자로 성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기관 전체적인 관점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잘나가는 선진국들은 회계가 강하다. 금융이 강한 나라들이 특히 그렇다. 영국을 비롯한 과거 영연방에 속했던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홍콩 등이 좋은 예다. 미국도 금융과 더불어 회계가 강하다.

회계를 강하게 하려면 국제경쟁력이 높은 회계전문가를 많이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그보다 회계를 아는 저변인력을 확대하고 이들이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도록 하는 게 절실히 요구된다. 다시 말해 회계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오히려 회계를 강하게 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매년 1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공인회계사 시험을 보고 이 중 약 2000명이 1차 시험에 합격한다. 이 가운데 약 800명이 2차 시험에 합격해 공인회계사가 되지만,나머지 1200명은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한다. 이들에게 회계기능사 자격을 주어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기관의 각 분야에서 회계지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할 만하다.

주인기 < 연세대 경영학 교수 / 아시아태평양회계사연맹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