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여행업계 '추석특수'] "금융사·대기업, 10만원 넘는 한우·곶감세트 주문 부쩍 늘어"
박우규 롯데백화점 법인영업팀 과장은 요즘 팀내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그동안 거래가 없던 A금융사에서 지난주 1억원가량의 선물세트 주문을 받아와서다. 올 추석시즌 단일 계약으로는 최고 금액이다. A금융사는 본사와 각 지점의 우수 고객에게 전달할 추석 감사 선물 20여개 품목을 롯데백화점에서 구매하기로 했다. 박 과장은 "이 회사는 올해 실적이 좋아져 작년보다 선물단가를 높이고 물량을 늘려 잡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단가는 비싸지만 선물 품질과 서비스 만족도가 높은 백화점을 택한 이유"라고 말했다.

◆유통가 '명절 대목' 예감

추석(22일)을 1주일 앞둔 백화점,대형마트,온라인몰 등 유통가가 '선물 특수'로 활기를 띠고 있다. 롯데백화점에선 선물판매를 시작한 지난 6일부터 13일까지 매출(예약판매 포함)이 작년 추석 시즌 같은 기간보다 20.0%,현대와 신세계는 각각 17.1%와 16.1% 증가했다. 3대 백화점은 추석상품권 매출도 15.9~19.0% 확대됐다.

이마트는 13일까지 선물세트 매출이 27.3%,홈플러스는 28.4% 늘어났다. 롯데마트는 30.5% 증가했다. GS샵과 CJ오쇼핑,G마켓,롯데닷컴 등 홈쇼핑과 온라인몰도 20~30%씩 늘어났다.

최원일 롯데백화점 식품부문장은 "경기 회복세로 실적이 좋아진 기업들이 일찌감치 구매에 나서면서 시즌 중반까지 매출 호조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추석 1주일 전부터 본격적으로 구매하는 개인들이 받쳐준다면 올 설에 이어 추석에도 두 자릿수 성장이 무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인고객이 '선물 특수' 주도

특수윤활유 제조업체인 한국하우톤의 정창열 계장은 지난 13일 이마트 구로점을 찾아 직원 선물용으로 3만2800원짜리 스팸세트 245개를 구매했다. 직원들에게 2만5000원짜리 참치세트를 준 작년 추석보다 선물단가를 30%가량 높였다. 정 계장은 "지난해 상반기까진 회사가 어려웠지만 올 들어선 완전히 회복했다"며 "얼마 전 노사협의를 통해 임금을 8% 인상한 데 이어 선물 예산도 늘려 잡았다"고 설명했다.

업종이나 지역별로 '온도차'가 있지만 법인 등 대량 구매 고객들이 유통업체들의 선물 특수를 주도하고 있다. 9000여개 업체가 입주한 구로디지털단지 안에 있는 이마트 구로점 선물세트 매출은 13일까지 50.3% 증가해 전국 이마트 점포 중 신장률이 가장 높았다. 이형석 구로점 추석TF팀장은 "법인들의 선물세트 구매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선물 단가도 올라 지난해 1만5000~2만원에서 올해는 2만5000원짜리 세트가 많이 나간다"고 설명했다.

백화점에서는 금융회사들의 구매가 크게 늘었다. 작년 추석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직원용 선물로 7만원짜리 사과 · 배세트를 500개 구매한 B은행은 올해는 10만원짜리 곶감세트로 같은 수량을 주문했다.

C보험사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기존 구매 수량 이외에 고객용 선물로 햇상품으로 구성한 10만원대 세트를 별도로 주문했다. 장경주 무역센터점 식품팀장은 "올해 금융시장이 괜찮은 데다 업체 간 우수 고객 잡기 경쟁이 치열해져 금융업체들의 선물 구매가 크게 늘었다"며 "주로 한우 등 고가 정육세트나 가격이 20~30% 오른 사과 · 배세트를 구매한다"고 말했다. 반면 침체에 빠진 건설업종이나 '리베이트' 규제가 강화된 제약업종은 부진하다. 장 팀장은 "작년까지 거래하던 건설사나 제약사 중에는 이번 추석에 선물을 아예 구입하지 않는 업체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소비자 · 재래시장 '물가 상승'에 한숨

올 추석 선물경기의 최대 복병은 '물가'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야채와 과일,생선 등 가격이 너무 올라 걱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마트 미아점에서 만난 주부 이정옥씨는 "가격이 올랐다고 조상을 모시는 차례상 준비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며 "예산이 빠듯해 음식 장만에 돈이 더 드는 만큼 선물은 못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을 찾은 한 20대 여성은 "선물세트 가격도 많이 오른 것 같다"며 "집안 어른들에게 선물 대신 현금을 드릴 생각"이라고 밝혔다. 일선매장에서는 가격에 민감한 개인 소비자들의 선물 구매 심리가 위축돼 유통업체들의 매출 성장률이 작년보다 소폭 증가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명절 특수가 사라진 지 오래된 재래시장에도 물가 상승으로 더욱 찬바람이 불고 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선어를 파는 허인지씨는 "작년 이맘때보다 손님이 60~7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송태형/오상헌/심성미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