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때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밤낮없이 일하는 부모님의 고생을 덜자면 성공해야 한다고 믿었다. 1982년 전미(全美)체조대회에서 종합 3위를 차지,다음해 올림픽 상비군이 됐다. UCLA,스탠퍼드대 등 체조팀 운영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쏟아졌다.

앞길 창창하던 83년(18세) 연습하다 경추를 다쳐 전신마비가 됐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실패작이 됐다는 생각에 시달렸지만 재활훈련으로 연필을 쥘 수 있게 된 순간 다시 꿈이 솟아났다.

죽어라 공부,뉴욕대를 나온 뒤 컬럼비아대와 다트머스 의대를 거쳐 하버드 의대 인턴과정을 마쳤다. 존스 홉킨스 병원 재활의학 수석전문의로 재직중인 이승복 박사(로버트 리 · 45) 의 인생여정이다. 휠체어를 타고 진료하는 그는 장애인에겐 희망,환자에겐 고통을 견디게 하는 묘약,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겐 도전과 재생의 증거다.

그런 그가 13일 서울대에서 가진 강연을 통해 "장애 극복의 가장 큰 적은 주위 시선을 의식하는 자신"이라고 말했다는 소식이다. 미국의 장애인 지원체계가 월등하긴 하지만 그보다 남의 눈에 무너지지 않는 자기 선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의대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가능하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며 진짜 챔피언은 "자신의 한계와 불가능을 이겨내 뭔가 성취하고 무엇보다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고도 한다.

세상에 밝은 빛을 던지는 챔프로 치면 서울대 이상묵 교수(48)도 마찬가지.미국 MIT 해양학 박사로 서울대 강단에 섰던 그는 2006년 미국에서 발생한 사고로 전신이 마비됐지만 턱과 뺨으로 움직이는 전동 휠체어를 탄 채 연구하고 강의한다.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소변을 볼 수 있으니 행운'이다 싶었다는 이승복 박사와 '손발을 써야 하는 피아니스트나 발레리노가 아니라 뇌와 가슴만으로 가능한 과학자여서 다행'으로 여겼다는 이상묵 교수의 말은 장애를 뛰어넘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려준다.

긍정적 자세로 자신의 장애를 이긴 건 물론 다른 장애인들을 돕고자 애쓰는 진짜 챔프들의 이야기는 문득 푸슈킨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모욕을 두려워하지 말고/ 월계관을 요구하지도 말라/ 칭찬도 비방도 무심히 여기고/ 바보들과 시비를 가리지 말라.'<나는 경이로운 기념비를 세웠다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