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무리를 한 탓에 일찍 퇴근해 쉬려고 하던 차에 옆 방 동료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간단하게 한잔 어때?" 잠깐 망설이다가 대답한다. "친구가 상(喪)을 당해 가봐야 돼.다음에 하자구." 딱 잘라 거절하기 어려울 때 흔히 하는 거짓말이다.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순간적으로 거짓말이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다.

'거짓말 박사'란 별명을 가진 폴 에크먼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이 얼마나 자주 거짓말을 하는지를 실험했다. 결과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평균 8분에 한 번,하루 200여번 하는 것으로 나왔단다. 물론 거짓말의 기준을 광범위하게 잡았을 게다. 뒤집어 보면 8분에 한 번꼴로 속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거짓말은 인간 본능의 하나로밖에 볼 수 없다. 정신과 의사 조지 서번은 '거짓말은 제2의 천성'이라고 했다.

거짓말을 시작하는 건 유년기부터라고 한다. 그러다가 부모의 감독에서 벗어나 밖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청년기부터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진화 단계에서 인간의 대뇌가 급격히 커진 것도 거짓말 기술과 그걸 알아채려는 능력이 함께 발달했기 때문이란 설도 있다. 물론 모든 거짓말이 나쁜 건 아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 것은 선의의 거짓말이다. 없이 살던 시절 어머니가 배고픈 자식들에게 "나는 밥을 먹었다"며 당신의 밥을 얹어주던 것은 이타적 거짓말에 속한다.

문제는 악의적 모함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하는 거짓말이다.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건 물론이고 결국 자신에게로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얼마전 총리 후보자가 거짓말에 발목을 잡혀 낙마하더니 요즘엔 방송인 원정도박설,가수의 병역기피 의혹,'명품녀'과장방송 여부 등을 놓고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당사자들은 상처를 입게 될 게 뻔하다.

에크먼 교수는 대부분의 거짓말은 '보인다'고 단언한다. 음성이나 몸짓,표정 등에 단서가 나타난다는 얘기다.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어지는 탓이란다. 아무리 거짓말이 인간본성의 하나라 해도 속여서 위기를 벗어나려다간 다치게 돼 있다. 뭔가 잘못됐으면 이실직고하고 바로잡는 게 최선이다. '거짓말은 꽃은 피우지만 열매를 맺지는 못한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