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공정(公正)의 쓰나미'라 할 만하다. 처음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국정의 화두로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소외계층을 보듬자는 친서민,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修辭)쯤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무총리와 일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고,딸의 특혜 채용으로 물의를 빚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사퇴 파문을 거치면서 엄청난 태풍으로 사회 전반을 강타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공정의 홍수에 휩쓸려 왔고 공정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어느 곳에서 누굴 만나든 온통 공정사회가 대화의 중심이고,그 공정이라는 한마디의 파괴력이 어디까지 미칠지가 최대 관심사다. 이 대통령 스스로도 자신이 마음먹고 한 총리 · 장관 인사까지 헝클어지면서 국정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거듭 '기회의 균등,결과에 대한 책임'이라고 공정의 의미를 규정했지만 여전히 두렵고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이 많다. 기득권 계층에는 더욱 불편하기 짝이 없다. 공정은 당연히 옳은 가치지만 갑자기 엄격해진 정치 · 경제 · 사회적 공정의 잣대가 과연 무엇인지를 모르겠다는 푸념도 나온다. 기득권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무시된 채 그 기득권 자체가 악(惡)이라는 무조건적 반감,인민재판식 포퓰리즘으로 쏠리는 것에 대한 경계심의 표출이다.

진부하지만 존 롤스가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말한 두 가지 원칙을 다시 인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우리 사회에 '정의 열풍'을 몰고 온 마이클 샌델의 학문적 스승이자 그보다 한 세대 앞서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정의 문제를 강의한 정의론의 원조다.

첫째, 모든 사람은 가장 광범위한 기본적 자유와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여기에는 정치적 자유뿐 아니라 언론 · 집회 · 양심 · 사상의 자유,사유재산권과 신체의 자유 등이 모두 포함된다. 둘째,경제적 · 사회적 불평등은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특권을 누리는 직위와 직책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될 때 정당화된다. 바꿔 말해 자유 및 기회의 평등이 전제된다면 부(富)와 소득의 분배,권력의 불균등은 불가피한 것으로 양해돼야 한다는 것이다.

롤스의 자유주의적 평등이론은 사회적으로 소외돼 가장 낮은 수준의 혜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최소수혜자'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시스템을 우선한다. 그럼에도 핵심은 두 번째의 차등 원칙에 있다. 사람들은 자기 능력과 노력에 따라 합당한 대가를 얻고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다. 사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면 그것만큼 불공평한 일도 없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똑같은 대가를 얻는다면 그건 결코 정의가 아니다.

결국 공정의 본질은 '정당한 불평등'에 있는 것이다. 그 정당성의 근거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절차다. 롤스는 "절차적 정의가 성립하는 경우에는 올바른 결과에 대한 독립적 기준이 없으며 바르고 공정한 절차만 제대로 따르면 그 결과도 바르고 공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누군가 로또복권에 당첨돼 부자가 된 것을 불평등한 일이라고 할 수 없고,설령 도박이라 할지라도 부당한 속임수를 쓴 것이 아니라 정해진 규칙을 따랐다면 돈을 따고 잃은 결과 또한 공정한 것이다.

그러니 공정의 잣대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개인의 선택과 능력에 따른 불평등은 공정한 결과지만,공평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장관의 딸'에 대한 특별 대우야말로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다. 법과 상식,통념이 제대로 지켜지고 불법과 반칙이 결코 용납되지 않는 세상,그것이 공정한 사회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가진 게 많은 사람이 아니라 소외된 최소수혜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그런 게임의 규칙이 공정의 기준인 것이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