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많은 제자 가운데 자공처럼 세상사에 밝았던 이도 드물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던 14년여는 그야말로 저마다 위기 상황이 존재했고,제자들 역시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고 각 제후국을 다니면서 패권보다 왕도를 내세우며 인의를 전파하고 실천하려는 입장이었다.

자공은 위(衛)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단목사(端木賜)이고 공자보다 31세나 어렸다. 말재주가 뛰어났으나 그 점을 못마땅하게 여긴 공자에게 수시로 핀잔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머리회전이 빠르고 심리술에 밝은 그가 스승 공자에게 한 술 더 떠 자신이 어떤 사람이냐고 되물어 "너는 호련(瑚璉)이다"란 대답을 듣기도 했다. 호련은 종묘제사 때 기장을 담던 화려한 그릇이니 자공의 능력을 말솜씨 이외엔 별 쓸모가 없다고 본 것일까. 아니면 자공이 명분만을 앞세우는 듯한 군자상보다는 현실을 냉철하게 보고 가감 없이 판단해서 응용하는 탁월한 지혜와 통찰력의 소유자임을 어느 정도 인정했기 때문일까.

공자가 제후국을 방문할 때 예우를 받았던 것은 외교가이자 거부였던 자공이 수행한 덕분이다. 제후 왕들은 정국의 흐름을 훤히 꿰고 있는 자공에게 오히려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이상주의 정치보다는 자공의 현실감각이 와 닿았을 것이다. 노나라는 서쪽의 진(晉)나라,동쪽의 강국 제나라,남쪽의 오나라 · 월나라 등에 둘러싸인 최약소국이었으니 언제든 열강의 주도권 싸움에 휘말릴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터득한 것은 생존의 기술이었다.

예를 들어 보자. 제나라의 대부 전상이 내부에서 난을 일으키려다 실패하자 제나라의 위세가들인 고씨들과 함께 노나라를 공격하려는 긴박한 상황이 발생했다. 전상을 찾아간 자공은 노나라를 공격하지 말고 오나라를 쳐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듣기에 나라 안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강한 적을 공격하고,나라 밖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약한 적을 공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의 골칫거리는 나라 안에 있습니다. 제나라 왕께서 당신을 세 번이나 봉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이뤄지지 않은 것은 대신들 가운데 반대하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노나라를 쳐서 제나라 땅을 넓히게 된다면 제나라 왕은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에 더욱 교만해질 것이고,대신들의 위세는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왕과의 사이가 날로 소원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오나라를 치는 것만 못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나라를 공격해 이기지 못하면 백성은 나라 밖에서 죽고,대신들은 나라 안에서 그 지위를 잃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신은 위로는 대적할 만한 강한 신하가 없어지고 아래로는 백성의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니 왕을 고립시켜 제나라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게 됩니다. "(《사기》 중니제자열전)

자공의 논리는 간단했다. 지지기반이 부족한 전상에게 정권의 주류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허장성세를 버리고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궁궐 내에서 입지를 굳히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충고였다. 이뿐이 아니다. 자공은 월나라 구천을 찾아가 탁월한 외교 감각을 드러내 일정 기간 노나라를 평온하게 만들었다.

요즘 외교통상부의 내홍이 심각하다. 하루빨리 사태를 추스르고 자공의 혜안을 거울 삼아 역량을 외부로 집약하고,G20 정상회의 등 산적한 문제에 정력을 쏟아야 할 듯하다. 날은 저물고 해는 짧지 않은가.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wjkim@ko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