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수단 다르푸르 내전은 '종족갈등' 아닌 '물 부족'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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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전쟁 | 하랄트 벨처 지음 | 윤종석 옮김 | 영림카디널 | 424쪽 | 1만7000원
대가뭄으로 대규모 난민 발생…민병대 개입, 대량학살로 비화
변화된 환경에서의 생존경쟁, 끔찍한 폭력·전쟁으로 표출…선진국이 앞장서 대안 마련해야
대가뭄으로 대규모 난민 발생…민병대 개입, 대량학살로 비화
변화된 환경에서의 생존경쟁, 끔찍한 폭력·전쟁으로 표출…선진국이 앞장서 대안 마련해야
아프리카 수단 서부 다르푸르 지역에서 2003년 7월 이후 계속되고 있는 내전은 아랍계 기마 민병대와 아프리카계 농부들 간의 종족갈등이 원인인 것처럼 알려져 있다. 다르푸르의 인종이 대체로 유목민적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토착 아랍계와 농업적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아프리카계의 여러 부족들로 복합하게 얽혀 있는 게 사실이다.
정착한 농민들과 가축을 키우는 유목민들 사이의 갈등은 이미 1970년대에 시작됐다. 갈수록 토양침식이 심해져 목초지가 줄어드는 반면 가축은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착한 농부들은 1984년 대가뭄 시기에 유목민인 아랍계의 가축떼가 자신들의 들판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기존의 목초지 이동경로를 이용할 수 없게 된 유목민들은 반발했고,급기야 오랜 농업전통에 따라 야생초지를 불태우던 농민들을 공격했다. 농민이 불태우던 잡초가 기진맥진한 가축떼에겐 최후의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수단에서는 1967~1973년,1980~2000년 극심한 가뭄이 발생했으며 그때마다 다르푸르에선 폭력과 갈등이 터져나왔다.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온 것은 1972~1983년뿐이었다. 따라서 다르푸르 내전의 원인은 단순한 종족분쟁을 넘어 기후 변화로 인한 환경의 변화라고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하랄트 벨처 교수(에센대)는 지적한다. 줄어든 강우량과 이로 인한 북부 유목민의 남부 이동,대가뭄으로 인한 대량 난민과 급격한 인구 증가,정부의 비호를 받는 민병대의 개입 등이 끔찍한 민족학살을 초래했다는 얘기다.
벨처 교수가 《기후전쟁》에서 기후변화와 폭력의 관계에 주목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세계적인 기후변화로 인해 개별 국가와 사회는 물론 전 지구적으로 심각한 갈등이 야기되고 있으며,변화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은 폭력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과 토지를 둘러싼 분쟁,인종청소,빈곤국에서 계속되는 내전과 끝없는 난민행렬 등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문제다.
그런 점에서 벨처 교수의 시각은 기후변화라는 주제를 주로 자연과학자들에게만 맡겨온 인문 · 사회과학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기후변화가 물리적 변화는 물론 사회적 관계의 붕괴와 자원갈등,대규모 이주사태,안보위협,불안,근본주의 경향,전쟁과 폭력 등의 현상을 초래하고 있는데도 인문 · 사회과학자들이 이를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후변화와 그 결과에 대한 연구는 인문 · 사회과학의 고유영역이라고 주장한다. 기후변화가 계급,종교적 신념,자원문제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인간의 공존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르완다 인종학살,베트남전쟁의 민간인 학살,유고연방 붕괴 이후 내전과 인종청소 등 과거의 폭력현상은 인간이 재앙을 어떻게 지각하는지,공포와 불안으로 발생한 갈등이 어떻게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준다.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폭력의 희생물이 된 이스터섬과 생태적 문제가 폭력으로 비화된 르완다 내전의 예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기후변화가 폭력과 전쟁의 원인이 될 것임을 거듭 예고하면서 미래에 발생할 전쟁의 두 가지 원인으로 물 부족,극지방의 해빙으로 인한 천연자원 및 영토 분쟁을 든다. 특히 물 부족은 세계 전 지역에서 폭력적 갈등을 유발하는 환경분쟁으로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저자는 특히 기후변화의 사회 · 경제적 결과들이 전 지구적으로 불공평하게 배분되고 있는 점을 우려한다. 지난 250년 동안 가난한 나라들의 자원을 활용해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룬 선진국들이 그로 인한 기후변화의 책임을 온전히 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은 가난한 나라,가난한 사람들이 당하고 있어 심각한 잠재 갈등요소가 되고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따라서 이 책은 화석에너지와 탄소배출을 토대로 이룬 지금까지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한다. 기후변화를 생태 문제에 국한해 기술적 해결책만 모색하는 데서 벗어나 이를 사회 · 문화적 문제로 인식하고 선진국들이 앞장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생산에서 소비까지 모든 생활습관과 문화적 관행의 변화,현재의 '탄소사회'에서 '탈탄소사회'로 거대한 변혁이 뒤따라야 한다"며 "녹색뉴딜에 가장 근접한 한국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위기에서 승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정착한 농민들과 가축을 키우는 유목민들 사이의 갈등은 이미 1970년대에 시작됐다. 갈수록 토양침식이 심해져 목초지가 줄어드는 반면 가축은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착한 농부들은 1984년 대가뭄 시기에 유목민인 아랍계의 가축떼가 자신들의 들판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기존의 목초지 이동경로를 이용할 수 없게 된 유목민들은 반발했고,급기야 오랜 농업전통에 따라 야생초지를 불태우던 농민들을 공격했다. 농민이 불태우던 잡초가 기진맥진한 가축떼에겐 최후의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수단에서는 1967~1973년,1980~2000년 극심한 가뭄이 발생했으며 그때마다 다르푸르에선 폭력과 갈등이 터져나왔다.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온 것은 1972~1983년뿐이었다. 따라서 다르푸르 내전의 원인은 단순한 종족분쟁을 넘어 기후 변화로 인한 환경의 변화라고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하랄트 벨처 교수(에센대)는 지적한다. 줄어든 강우량과 이로 인한 북부 유목민의 남부 이동,대가뭄으로 인한 대량 난민과 급격한 인구 증가,정부의 비호를 받는 민병대의 개입 등이 끔찍한 민족학살을 초래했다는 얘기다.
벨처 교수가 《기후전쟁》에서 기후변화와 폭력의 관계에 주목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세계적인 기후변화로 인해 개별 국가와 사회는 물론 전 지구적으로 심각한 갈등이 야기되고 있으며,변화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은 폭력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과 토지를 둘러싼 분쟁,인종청소,빈곤국에서 계속되는 내전과 끝없는 난민행렬 등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문제다.
그런 점에서 벨처 교수의 시각은 기후변화라는 주제를 주로 자연과학자들에게만 맡겨온 인문 · 사회과학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기후변화가 물리적 변화는 물론 사회적 관계의 붕괴와 자원갈등,대규모 이주사태,안보위협,불안,근본주의 경향,전쟁과 폭력 등의 현상을 초래하고 있는데도 인문 · 사회과학자들이 이를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후변화와 그 결과에 대한 연구는 인문 · 사회과학의 고유영역이라고 주장한다. 기후변화가 계급,종교적 신념,자원문제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인간의 공존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르완다 인종학살,베트남전쟁의 민간인 학살,유고연방 붕괴 이후 내전과 인종청소 등 과거의 폭력현상은 인간이 재앙을 어떻게 지각하는지,공포와 불안으로 발생한 갈등이 어떻게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준다.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폭력의 희생물이 된 이스터섬과 생태적 문제가 폭력으로 비화된 르완다 내전의 예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기후변화가 폭력과 전쟁의 원인이 될 것임을 거듭 예고하면서 미래에 발생할 전쟁의 두 가지 원인으로 물 부족,극지방의 해빙으로 인한 천연자원 및 영토 분쟁을 든다. 특히 물 부족은 세계 전 지역에서 폭력적 갈등을 유발하는 환경분쟁으로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저자는 특히 기후변화의 사회 · 경제적 결과들이 전 지구적으로 불공평하게 배분되고 있는 점을 우려한다. 지난 250년 동안 가난한 나라들의 자원을 활용해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룬 선진국들이 그로 인한 기후변화의 책임을 온전히 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은 가난한 나라,가난한 사람들이 당하고 있어 심각한 잠재 갈등요소가 되고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따라서 이 책은 화석에너지와 탄소배출을 토대로 이룬 지금까지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한다. 기후변화를 생태 문제에 국한해 기술적 해결책만 모색하는 데서 벗어나 이를 사회 · 문화적 문제로 인식하고 선진국들이 앞장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생산에서 소비까지 모든 생활습관과 문화적 관행의 변화,현재의 '탄소사회'에서 '탈탄소사회'로 거대한 변혁이 뒤따라야 한다"며 "녹색뉴딜에 가장 근접한 한국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위기에서 승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