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윤리,신뢰 등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회의 원활한 운행을 위한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일차적으로는 법이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을 규율하지만 인간의 모든 행동을 규율할 수는 없으므로 도덕,윤리,신뢰 등이 개인 간의 분쟁을 줄이고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기준이 된다.

지난 번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 청문회는 우리 사회의 도덕과 윤리 수준에 대해 중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인 만큼 흠 없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상식적인 기준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도 꽤 있었기 때문이다.

삶이 더 윤택해질수록 도덕,윤리,품위의 수준도 더 높아지는 것이 상례인데 요즈음 우리 사회는 그런 것 같지 않다. 먹고 살기에 바빴고 가난했던 시절에는 도덕과 윤리 따위는 따질 겨를이 없어서 그런 실체가 잘 나타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더 후퇴한 모습이라는 말이다. 총리나 장관 후보를 사전에 검증하는 정부 부서의 치밀하지 못한 업무 수행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떳떳하지 못한 이력(履歷)을 지닌 인사들이 총리나 장관을 하겠다고 나서는 현상이 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군대를 기피한 사람이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공적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나 입대를 회피하기 위해 스스로 몸의 일부를 손상시킨 사람이 공직에 선출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도덕과 윤리적 잣대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한다. 작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군대에서 썩는다고 말했다가 군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이라고 비난을 받았지만 군 기피자들이 별다른 문제없이 버젓이 행세하는 모습을 보면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부도덕한 행위를 정제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자정능력이 이 정도라면 곧 다가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일반인들과는 특별히 다른 덕목을 요구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다른 일반인들이 다하는 의무조차도 이행하지 않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사회 지도층이라는 칭호를 받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주는 도덕적 신호가 왜곡되고 법과 원칙에 입각해 살려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허탈감과 좌절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사유 재산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른바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을 홀로 해결할 수 있는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들은 남에게 얹혀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면서도 '무릇 인간은 자원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돼야' 하고,'분배 정의'와 '기회의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는 등,일견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아무런 내용이 없는 '빈 개념(empty concept)'의 용어들을 남발하며 혹세무민(惑世誣民)을 일삼는다. 그래서 그들은 태생적으로 도덕이나 윤리,품위와 명예라는 덕목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여지는 '기회의 평등'이 '빈 개념'이라고 하는 이유는 동일한 기회라고 하더라도 부여하는 가치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더 없이 소중하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한낱 쓸데없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진보와는 달리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자들의 행동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높은 도덕과 윤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의 도덕과 윤리 수준이 높아져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들의 일부 병리 현상을 틈타 나라 전체를 가난과 질곡(桎梏),그리고 총체적 부도덕으로 몰고 가는 진보 세력의 등장을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깨끗하고 대중영합주의에 휘둘리지 않는 철학적 기반을 갖춘 보수가 튼튼하게 뿌리내려야 한다.

김영용 < 한국경제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