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랩 어카운트 등 투자일임업에 대한 개선안을 확정했지만 정작 관련 업계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졸속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투자일임업 시장의 혼탁을 방지하고 투자자보호를 위해 개선방안으로 내놓은 집합운용 금지와 성과보수 지급 제한 등이 관련 업계인 증권사와 투자자문사의 불만을 사고 있다.

금융위는 전날 투자일임업 시장의 혼탁을 방지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기준지수 보다 더 높은 수익을 냈을 때만 성과보수를 지급하도록 강제하고, 펀드와 같은 집합운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선안을 확정했다.

투자자문사 포트폴리오를 따라 투자하는 추종매매를 막기 위해 가입자의 랩 계좌 매매정보 조회를 일정기간 금지하는 조치는 강제규정을 두지 않고 증권사와 가입자가 자율 결정하도록 했다. 아울러 랩 어카운트의 최저 가입액도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율에 맡기기로 결론냈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추종매매를 막기 위한 포트폴리오 유출 방지책은 빠지고 펀드보다 낮은 수수료 체계에서 성과보수마저 옥죄는 등 오히려 거꾸로 간 개선안 아니냐는 혹평이 나오고 있다.

성과보수에 대해서는 자문사들의 불만이 더욱 크다. 코스피 수익률을 밑도는 성적을 내는 투자자문사는 규제를 하지 않더라도 자율적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현재 투자자문사의 투자일임 보수는 대체로 기본수수료 1%~1.5%와 10% 내외의 수익을 냈을 경우 그 수익에 대해 10%~15%의 성과보수를 가져가는 체계로 이뤄져 있다.

한 자문사 관계자는 "성과보수에 대한 기준지표를 코스피지수나 코스피200지수로 획일화 할 경우 자문사 운용스타일과 기준지표와의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며 "규제보다는 본연의 운용 성과에 따라 시장에서 평가 받고 보수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도 "고객들은 코스피 대비 낮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경우 곧바로 증권사나 자문사를 옮겨버리거나 강하게 불만을 제기한다"며 "그렇지 않아도 경쟁심화로 수수료율이 하향 추세에 있는데 성과보수마저 제한한다면 새롭게 막 싹트는 맞춤형자산운용 업계의 싹을 자르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핵심은 과도한 성과보수 요구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금융사와 투자자 간 명확한 기준을 만들자는 것"이라며 "기준지표를 코스피나 코스피200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업종별 지수 등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업계의 반발때문에 금지쪽로 가닥을 잡은 집합주문 부분도 뭇매를 맞고 있다.

한 증권사 랩운용부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투자일임업 구조나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집합주문을 낼 수 없게 금지한다면 수익률 저하와 비용증가 등으로 랩 어카운트 운용이 급속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금융위는 랩이 공모펀드처럼 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금처럼 모든 랩 계좌에서 자산대비 동일비율로 주문하는 방식을 1년 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완전히 금지하기로 했다. 맞춤형자산관리서비스라는 당초 취지를 벗어나 펀드의 '집합운용'과 같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랩 어카운트를 운용하고 있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개별 계좌별로 다른 가격과 비중으로 주문을 낼 경우 시차가 생겨 수익률 차이가 발생할 수 있고 이를 더욱 정밀하게 하기 위해 인력을 늘리면 경영효율성이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강승건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집합주문을 금지하고 자문사의 종목과 비중을 주기적으로 제공받는 부분이 제한될 경우 소수의 고액자산가들을 많이 유치한 대형 증권사는 효율성 면에서 영향이 없겠지만 다수의 소액 고객을 보유한 중소형 증권사는 타격을 입을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문형 랩의 성장은 증권사의 수익성 개선에 긍정적인 요인인 만큼 가입금액이 적은 고객들이 많은 증권사는 수익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고액자산가를 상대적으로 많이 확보하고 있는 대형사에는 제한적인 수혜가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추종 매매를 막기 위한 자문사 포트폴리오 시차 공개가 개선안에 포함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 자문사 관계자는 "투자자문이라는 고유한 지적 재산권 서비스가 메신저 등을 통해 무단으로 유포되고 있는 부분에 대한 통제 방안이 이번에 빠졌다"면서 "자산운용사의 펀드 운용에 대한 정보는 보호되고 있으면서 자문사의 운용정보만 모두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은 만큼 자문형 랩만이라도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투자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법률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자율계약으로 유도하려는 것"이라며 "현재도 매매내역 공개를 하루에서 1주일 정도로 제한하도록 계약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개선안에 대한 업계의 의견을 추가적으로 청취해 금융투자업 규정 개정안에 최종 반영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변관열 기자 b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