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서인 '자치통감'에 '삼십육계주위상책(三十六計走爲上策)'이란 말이 있다. 상황이 불리하면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란 뜻이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명제 때의 일이다. 명제는 3,4대 황제들을 모두 죽이고 황위에 올랐으나 반란이 두려워 형제와 조카,왕족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그러자 왕경칙이 반란을 일으켰다. 왕경칙은 출정한 지 10여일 만에 파죽지세로 큰 성들을 함락시키고 큰소리를 쳤다. "서른여섯 가지 계책 중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 했으니 황제 그대도 어서 도망을 가라." 하지만 자만에 빠져 방심한 탓에 왕경칙은 제나라 군사에게 붙잡혀 참수를 당했다.

왕경칙이 먼저 당하는 바람에 명제는 도망갈 필요가 없어졌지만 병력이 열세이면 물러나고 승산이 없으면 싸우지 않는 게 상책이다. 풍수도 지극히 흉한 곳에 지어진 건물인 경우 이사를 가는 방법만이 최선이다. 진자리엔 자리를 걷고,마른자리에 자리를 펴듯이 흉지를 피해 이사 가는 것은 절대로 비겁한 행동이 아니다. 험한 세상을 슬기롭게 사는 지혜다.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아야 할 만큼 흉한 터에 지어진 건물이 있다. 바로 'T자형'으로 길이 교차된 과녁빼기이거나,막다른 골목의 끝에 지어진 건물이다. 과녁빼기란 똑바로 건너다보이는 곳이란 순수 우리말이다. 옛날에는 이보다 더 흉한 상황은 없었기에 막다른 집이나 과녁빼기집은 사람이 살 집이 아니라 귀신이나 살 집으로 여겼다.

외적의 침입을 받을 경우 이들 집은 수비하는 측에서 적의 공격을 막는 거점으로 주로 이용됐다. 그 결과 양쪽의 공격을 받아 폐가가 되기 쉬웠고 억울하게 죽은 원혼이 머문다고 봤다. 현대 과학으로도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한 풍수다.

과녁빼기 건물이 흉한 것은 건물과 건물 사이 도로에서 빠져나온 바람이 곧장 불어닥쳐 해롭기 때문이다. 불이 나면 바람을 타고 불길이 밀어닥치기가 십상이다. 막다른 길의 건물은 남의 건물 앞을 지나야 밖으로 나갈 수 있어 불편하다. 앞 건물이 공사를 하거나 이사를 하면 통행에 지장을 받는다. 또 뒤로 뚫린 샛길이 없다면 화재 같은 재난이 닥쳤을 때 피할 길이 없다. 앉은 채로 고스란히 피해를 봐야 한다.

요즘에도 이런 흉한 터에 지어진 집들이 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금융회사 사옥은 대표적인 과녁빼기 건물이었다. 이 빌딩은 북동쪽에서 건물을 향해 직접 뻗은 도로의 끝 지점에 있다. 풍수가 흉한 결과였는지 이 회사는 많은 곤란을 겪다 다른 회사에 팔렸다.

하나 주의할 점은 있다. 도로가 곧장 건물로 쳐들어오지 않고 비스듬히 비껴 보인다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살기(殺氣)가 아니라 재물이 몰려오는 명당수로 봐야 한다. 화살은 직선으로 날아들지 사선으로 비껴오진 않는다.

어떤 건물이 과녁빼기집인지 아닌 지를 판단하려면 도로를 똑바로 봐야 한다. 앞쪽에 도로가 보였다고 성급히 이사 간다면 재물을 버리고 떠나는 바보들이다. 막다른 길이나 과녁빼기 터에 건물을 지었다 하더라도 대문이나 집의 중심을 도로에서 약간 옆으로 치우쳐 지으면 아무런 피해가 없다. 오히려 재물 운이 커지니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묘책이다.

고제희 < 대동풍수지리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