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명절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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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언제부턴가 명절은 남편들이 아내들 눈치 보는 날로 전락했다. 눈치 본다는 말이 자존심 상한다면 미안해하는 날이라고 해두자.
필자는 장손이고 40대 중반부터 집안 제사를 모시고 있는 처지라 명절이 가까워 오면 아내가 힘들어 할 것이 많이 신경 쓰인다. 요즘은 제사상을 아예 통째로 주문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인데 그렇게까지 하라고는 못하지만 살 수 있는 것은 사서 장만해 아내의 일손을 줄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명절이 참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장 좋은 계절에 찾아오는 추석은 특히 손꼽아 기다리는 명절이었다. 모처럼 친척들이 모여 북적거리는 집안 분위기에 공연히 신이 났고 평소에 먹기 힘든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해 즐거웠다. 또 새 옷 한 벌 얻어 입을 수 있어 마음이 들뜨곤 했다.
물론 지금도 추석이 되면 집집마다 오랜만에 보는 식구들이 모이고 명절 음식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아이들이 용돈을 얻는 풍경은 계속된다. 그렇지만 명절이 요즘 아이들에겐 그렇게 기다려지는 날만은 아닌 듯하다. 아무래도 모든 것이 다 풍요로워진 세상이라서 그런 것 같다. 경제가 좋아지고 자녀 수도 줄어들면서 언제든 원하는 것,먹고 싶은 것,하고 싶은 것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엄마들이 명절을 지겨워하는 것에는 물론 남녀의 위상이 달라졌고 전통적인 가치보다 개인 삶의 질을 우선 순위에 두게 된 시대적인 변화가 그 배경이겠지만 어느 정도는 아이들이 명절을 별로 재미없어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엄마들은 자식들이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조금 힘들어도 보람을 갖고 견뎌내는 이들이 아닌가. 우리 어머니 세대에도 제사상을 차리고 음식 만드는 일이 여간 고달프지 않았겠지만 명절이 오기를 기대하는 자식들 얼굴을 보며 한결 수월하게 넘기지 않았을까. 요즘 명절에는 설렘과 즐거움은 줄어들고 숙제라는 의무감만 남아버렸기 때문에 노동이 더욱 견디기 싫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
물자가 풍족해졌을 뿐 아니라 재미있는 일도 넘치게 많아진 세상이다. 컴퓨터 게임이니 미니 홈피니 트위터니,사이버 세상에는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빠져드는 재미있는 놀이가 끊임없이 개발돼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재미나는 것이 흔하고 많아진 세상이기에 오히려 잠시라도 재미가 없으면 지루해서 못 견디게 되는 것 같다. 무료한 일상이 지속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느긋이 견디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번씩 찾아오던 내 어린 시절의 명절이 그토록 즐거웠던 것처럼 어쩌다 생기는 재미나는 일이 더욱 감칠 맛나고 짜릿한 재미를 줄 수 있으니까.
허정범 < 현대하이카다이렉트사장 jbhuh@hicardirect.com >
필자는 장손이고 40대 중반부터 집안 제사를 모시고 있는 처지라 명절이 가까워 오면 아내가 힘들어 할 것이 많이 신경 쓰인다. 요즘은 제사상을 아예 통째로 주문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인데 그렇게까지 하라고는 못하지만 살 수 있는 것은 사서 장만해 아내의 일손을 줄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명절이 참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장 좋은 계절에 찾아오는 추석은 특히 손꼽아 기다리는 명절이었다. 모처럼 친척들이 모여 북적거리는 집안 분위기에 공연히 신이 났고 평소에 먹기 힘든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해 즐거웠다. 또 새 옷 한 벌 얻어 입을 수 있어 마음이 들뜨곤 했다.
물론 지금도 추석이 되면 집집마다 오랜만에 보는 식구들이 모이고 명절 음식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아이들이 용돈을 얻는 풍경은 계속된다. 그렇지만 명절이 요즘 아이들에겐 그렇게 기다려지는 날만은 아닌 듯하다. 아무래도 모든 것이 다 풍요로워진 세상이라서 그런 것 같다. 경제가 좋아지고 자녀 수도 줄어들면서 언제든 원하는 것,먹고 싶은 것,하고 싶은 것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엄마들이 명절을 지겨워하는 것에는 물론 남녀의 위상이 달라졌고 전통적인 가치보다 개인 삶의 질을 우선 순위에 두게 된 시대적인 변화가 그 배경이겠지만 어느 정도는 아이들이 명절을 별로 재미없어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엄마들은 자식들이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조금 힘들어도 보람을 갖고 견뎌내는 이들이 아닌가. 우리 어머니 세대에도 제사상을 차리고 음식 만드는 일이 여간 고달프지 않았겠지만 명절이 오기를 기대하는 자식들 얼굴을 보며 한결 수월하게 넘기지 않았을까. 요즘 명절에는 설렘과 즐거움은 줄어들고 숙제라는 의무감만 남아버렸기 때문에 노동이 더욱 견디기 싫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
물자가 풍족해졌을 뿐 아니라 재미있는 일도 넘치게 많아진 세상이다. 컴퓨터 게임이니 미니 홈피니 트위터니,사이버 세상에는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빠져드는 재미있는 놀이가 끊임없이 개발돼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재미나는 것이 흔하고 많아진 세상이기에 오히려 잠시라도 재미가 없으면 지루해서 못 견디게 되는 것 같다. 무료한 일상이 지속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느긋이 견디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번씩 찾아오던 내 어린 시절의 명절이 그토록 즐거웠던 것처럼 어쩌다 생기는 재미나는 일이 더욱 감칠 맛나고 짜릿한 재미를 줄 수 있으니까.
허정범 < 현대하이카다이렉트사장 jbhuh@hicardirec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