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앞으로 다가온 추석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예년보다 빠른 추석으로 인해 과일 값이 급등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은 탓이다. 지난 10년을 놓고 보면 추석이 가장 빨랐던 날은 2003년의 9월11일이었다. 당시 추석 닷새 전에는 신고배 상품(10개)이 2만7000원으로 한 달 전보다 42%나 뛰었다가 추석 한 달 뒤에는 19% 떨어졌다(농수산물유통공사 통계).

추석이 가장 늦었던 것은 2006년의 10월6일.빠른 추석과의 날수 차이가 25일에 이른다. 당시 배 가격은 한 달 전보다 15% 정도 오른 2만3000원으로 안정됐고,한 달 뒤에도 13% 하락에 그쳤다.

작년보다 열하루 앞당겨진 올 추석을 앞두고 과일과 채소값이 예년보다 더 큰 폭으로 치솟으면서 서민들의 차례상 비용이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지금 배 값은 2만6000원을 웃돌고 있다. 푸근한 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추석 명절을 보다 풍요롭게 지내기 위해선 충분한 햇과일이 나와야 하지만,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기온의 영향을 받은 데다 추석이 앞당겨진 탓이다.

음력 8월15일인 추석 날짜가 양력으로 늦은 해에는 그나마 다행이지만,앞당겨진 해에는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굳이 태풍이 그동안 7~9월에 집중됐다는 사실까지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추석 물가'는 날씨와 직결된다.

내년 추석은 9월12일로 더 당겨지고,4년 뒤인 2014년의 추석은 9월8일로 예정돼 있다. 이쯤 되면 본격적인 '여름 추석'이 이어지는 셈이다.

추석 날짜가 들쭉날쭉한 데다 추석이 빨리 오는 데 따른 경제적 손실도 크다. 과수농가는 명절에 맞춰 물량을 대느라 설익은 과일에 성장촉진 처리를 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내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하는 '후지 사과'는 10월 하순이 생산 적기이며,80% 가까이 차지하는 '신고 배'는 9월 말부터 10월 초에 주로 출하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명절이 지나면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하락에 시달린다.

백화점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들도 빠른 추석에 비상이 걸렸기는 마찬가지다. 농가와의 계약재배 등을 통해 안정적인 물량 확보에 주력하고 있지만,전반적인 공급 부족에 대처하느라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구온난화 현상마저 겹쳐 정육이나 수산물의 냉동 · 냉장 유통에도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유통업계에서 '양력 추석 도입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음력으로 된 추석을 10월 중순을 전후한 양력으로 바꾸면 햇과일 수급이 보다 안정되고,'아열대 추석' 또는 '여름 추석'이 아닌 제대로 된 '가을 추석'을 지낼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추석을 특정 요일의 양력으로 고정시키게 되면 산업계의 경영안정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처럼 주중에 추석이 걸려 길게는 '9일 연휴'가 이어지는 일이 사라지게 된다.

빠른 추석으로 인해 서민들의 차례상 비용이 올라가고,과수농가의 피해가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추수를 하기 전에 풍년을 기원하는 뜻을 담아 오랜 세월 이어져온 풍속을 바꿔선 안 된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문제는 음력인 '팔월 대보름'은 '정월 대보름'처럼 세시풍속으로 남겨 두고,대통령령으로 추석 연휴를 양력으로 바꾼다면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손희식 생활경제부장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