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FTA시대의 복병 '원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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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최근 한국과 EU는 내년 7월부터 FTA를 잠정 발효하기로 합의하고 내달 초 협정문에 서명하기로 했다. 한 · EU FTA가 발효되면 한국과 EU 27개 회원국은 하나의 거대 경제블록을 형성하게 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이은 세계 2위의 거대시장이 탄생하는 것이다.
EU와의 FTA가 발효되면 이미 시작된 16개국과 한 · 미 FTA를 포함해 우리 전체 교역의 36%가량을 FTA가 차지한다. 한 · EU FTA로 당장 우리 기업이 누릴 수 있는 관세절감 혜택은 15억달러(1조8000억원) 정도다.
그러나 FTA가 항상 기회의 장으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기업은 FTA 체결만으로 기업에 저절로 혜택이 돌아오는 것으로 알지만 여기에는 '원산지'라는 복병이 숨어 있다. FTA 협정에서는 체결국마다 다른 원산지 결정 기준을 갖고 있다. 이 기준에 맞춰 한국산이라고 인정돼야 혜택을 볼 수 있고,이를 증명하는 원산지 증명서를 세관이나 상공회의소 등에서 발급받아 상대국에 제출해야 한다.
특히 이번에 서명된 한 · EU FTA는 한층 강화된 원산지 조건을 요구한다. EU는 이웃한 중국산 제품이 한국으로 원산지를 세탁해 EU로 수입되는 것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원산지 규정에 맞춰 수출한 업체라도 EU 세관의 원산지 검증과정을 피해 나가야 한다. 원산지 검증 과정에서 원산지 관리 시스템이 부실하거나 5년간 의무적으로 보관하도록 돼 있는 원산지 관련 서류가 없으면 그동안 내지 않은 세금은 물론 엄청난 벌금까지 감수해야 한다. 관세 혜택은커녕 '벌금폭탄'에 휘말리는 것이다.
EU는 매년 전체 수입건의 0.5% 정도에 대해 원산지 검증을 하고 있는데 우리 기업도 연간 3000건 이상의 원산지 검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원산지를 인증받은 경험도 없는 데다 원산지 검증에 따른 인적 · 물적 투자 등의 부담도 있다. 이런 부담 때문에 FTA 혜택을 포기하고 기존처럼 관세를 물고 수출하려는 업체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관세 혜택을 받은 기업에 비해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시장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금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마다 FTA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시행 중이다. 관세청 역시 원산지 인증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 수출기업을 위해 원산지관리시스템(FTA-PASS)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다만 기업에서의 체계적인 원산지 관리를 위한 전문인력 확보와 시스템에 대한 투자,협력업체 간 원산지 정보교환 등은 기업이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다. 정부와 기업 모두가 FTA시대의 새로운 무역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낙오된다는 각오를 다질 때다.
윤영선 < 관세청장 >
EU와의 FTA가 발효되면 이미 시작된 16개국과 한 · 미 FTA를 포함해 우리 전체 교역의 36%가량을 FTA가 차지한다. 한 · EU FTA로 당장 우리 기업이 누릴 수 있는 관세절감 혜택은 15억달러(1조8000억원) 정도다.
그러나 FTA가 항상 기회의 장으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기업은 FTA 체결만으로 기업에 저절로 혜택이 돌아오는 것으로 알지만 여기에는 '원산지'라는 복병이 숨어 있다. FTA 협정에서는 체결국마다 다른 원산지 결정 기준을 갖고 있다. 이 기준에 맞춰 한국산이라고 인정돼야 혜택을 볼 수 있고,이를 증명하는 원산지 증명서를 세관이나 상공회의소 등에서 발급받아 상대국에 제출해야 한다.
특히 이번에 서명된 한 · EU FTA는 한층 강화된 원산지 조건을 요구한다. EU는 이웃한 중국산 제품이 한국으로 원산지를 세탁해 EU로 수입되는 것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원산지 규정에 맞춰 수출한 업체라도 EU 세관의 원산지 검증과정을 피해 나가야 한다. 원산지 검증 과정에서 원산지 관리 시스템이 부실하거나 5년간 의무적으로 보관하도록 돼 있는 원산지 관련 서류가 없으면 그동안 내지 않은 세금은 물론 엄청난 벌금까지 감수해야 한다. 관세 혜택은커녕 '벌금폭탄'에 휘말리는 것이다.
EU는 매년 전체 수입건의 0.5% 정도에 대해 원산지 검증을 하고 있는데 우리 기업도 연간 3000건 이상의 원산지 검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원산지를 인증받은 경험도 없는 데다 원산지 검증에 따른 인적 · 물적 투자 등의 부담도 있다. 이런 부담 때문에 FTA 혜택을 포기하고 기존처럼 관세를 물고 수출하려는 업체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관세 혜택을 받은 기업에 비해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시장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금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마다 FTA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시행 중이다. 관세청 역시 원산지 인증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 수출기업을 위해 원산지관리시스템(FTA-PASS)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다만 기업에서의 체계적인 원산지 관리를 위한 전문인력 확보와 시스템에 대한 투자,협력업체 간 원산지 정보교환 등은 기업이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다. 정부와 기업 모두가 FTA시대의 새로운 무역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낙오된다는 각오를 다질 때다.
윤영선 < 관세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