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영국에서 첫 여자축구팀 '브리티시 레이디스'가 생겼으나 앞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정식 경기는 변변히 치러보지도 못한 채 자선행사나 남녀 성대결대회 등 이벤트에 참가하는 게 고작이었다. 영국축구협회는 1902년 산하 클럽들에 여성팀과의 경기를 금지했고 얼마 후에는 여자축구를 위한 장소 제공까지도 막았다. 영국뿐만이 아니다. 독일도 축구는 정숙한 처녀들이 할 게 못된다며 1933년 금지령을 내렸다.

여자축구가 인정받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다. 1974년 독일에서 첫 여자선수권대회가 열린 데 이어 1984년에는 유럽선수권대회가 출범했다. 여자월드컵이 처음 개최된 건 1991년 중국에서다. 남자 월드컵보다 60년 이상 늦은 셈이다.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이 직접 주관하는 여자대회는 4개다. 여자월드컵,20세 이하(U-20) 월드컵,17세 이하(U-17) 월드컵,올림픽 등이다. 여자월드컵과 올림픽 여자축구는 4년마다 열리고,U-20과 U-17은 2년 주기로 치러진다.

여자선수들은 볼 키핑이나 컨트롤,패싱 능력에선 남자에게 크게 뒤지지 않지만 스피드 민첩성 순발력 등에서 차이가 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공을 툭 차놓고 달려가는 데선 여자 선수들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유의 치밀함과 팀워크로 아기자기하게 게임을 풀어가는 건 남자 경기에선 맛보기 어려운 재미다.

한국여자축구가 얼마전 20세 이하 월드컵 4강에 들더니 이번엔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리고 있는 17세 이하 월드컵에서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미 FIFA 주관 대회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확보한 상태에서 26일 새벽 일본과 결승전을 치른다. 여민지 선수는 지금까지 5경기에서 8골,3도움으로 득점 선두에 올라 있어 득점왕과 최우수선수를 동시에 노린다니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이렇게 눈부신 성적을 내고 있지만 한국 여자축구의 저변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실업팀 7개에 초 · 중 · 고 · 대학 팀을 합쳐 봐야 60여개에 지나지 않는다. 축구협회에 등록된 선수도 고작 1400여명이다. 반면 독일에는 선수가 100만명이 넘고 16세 이하 팀이 8600여개,성인팀이 5300여개나 된다. 미국도 대학 등록선수만 1만5000여명이라고 한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도 꿈을 키워온 우리 선수들이 멋진 경기로 일본을 꺾고 세계 정상에 서기를 바란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