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환율 전쟁의 여파로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원화 가치는 4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채권값 역시 상승세로 돌아서 사상 최고 기록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이른바 빅3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헤쳐나가는 방법으로 '돈을 풀어 통화가치를 절하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이 같은 회오리가 한참 더 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환율 연말까지 하락할 듯

24일 외환시장에서 원 · 달러 환율은 급락(원화가치는 급등)했다. 장이 시작되자마자 추석 연휴 동안 누적된 해외변수들이 한꺼번에 반영돼 시초가는 7원30전이나 내린 1154원에 형성됐다. 미국이 중국에 위안화가치 추가 절상을 요구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추가 양적 완화를 시사한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일본 정부가 엔화 강세에 따른 부작용 방지를 위해 원화나 태국 바트화 자산을 매입할 수도 있다는 관측 역시 환율 하락을 부추겼다.

이날 환율은 장중 내내 1150원대에서 머무르다 1155원대에서 마감했다. 지난 5월18일의 1146원60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원화값으론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내 연구소들과 외국 투자은행들은 원 · 달러 환율의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올 들어 7월까지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175억5000만달러에 이르고 상반기 중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동기 대비 7.6%에 달해 환율 하락 압박이 상당하다는 진단에서다. 삼성경제연구소와 현대경제연구원은 각각 내년 환율을 1110원과 1090원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최근의 추세를 감안하면 더 빠른 속도로 하락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모건스탠리는 하락폭을 더 크게 잡아 9월 말 1100원,연말 1075원까지 하락할 것으로 관측했다.

◆외환당국 방침에 주목

환율 향방을 결정짓는 것은 경제 펀더멘털과 시장상황뿐이 아니다. 외환당국의 방침도 중요한 변수다. 달러당 82엔까지 접어들었던 엔 · 달러 환율이 85엔 수준으로 다시 오른 것도 일본 정부의 개입에 따른 것이다.

지난 4월 말 이후 국내 외환시장에선 1160원이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다. 원 · 달러 환율이 1160원 아래로 떨어지면 외환당국이 미세조정을 위해 달러를 사들인 것이 사실이다. 이날도 원 · 달러 환율이 1155원 아래로 하락하자 시장에선 외환당국이 개입할 수 있다는 심리가 확산됐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환보유액이 3000억달러를 넘어야 안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많아지면서 최근 환율 하락을 외환보유액 확충의 기회로 삼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글로벌 환율 전쟁이 붙은 만큼 한국의 외환당국도 원 · 달러 환율 급락을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환율이 큰 폭으로 떨어질 때마다 외환당국의 조정 물량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외환당국의 개입물량이 크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많다. 전 세계가 중국 및 일본 정부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는 와중에 한국의 당국이 눈에 띄게 개입에 나섰다가는 집중포화를 맞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외국인의 한국채권 매입 이어질 듯

이날 채권가격 역시 급등(채권금리는 급락)했다. 지표물인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08%포인트 떨어졌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 또한 0.06%포인트 내렸다. 지난 9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후 소폭의 오름세를 보이다 다시 하락세로 기운 것이다.

채권금리가 하락한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다. 우선 미국과 일본이 시중에 돈을 풀면서 넘쳐나는 글로벌 자금이 경제상황이 양호한 국가로 흘러들어올 가능성에서다. 한국의 시장금리(5년 만기 국고채 금리 기준)는 연 3.86%로 미국의 시장금리 연 2.5%대(10년 만기 국채 금리 기준)보다 1.3%포인트가량 높다. 여기에다 원 · 달러 환율이 하락한다면 외국인 입장에선 '꿩 먹고 알 먹고'가 되는 셈이다. 외국인은 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55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국내 채권 매입에 투입했다.

이와 함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0월에도 기준금리(정책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점이 채권금리 하락을 재촉했다. 서철수 대우증권 차장은 "만약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인상한다면 국내외 금리차가 더욱 커져 외국인의 캐리트레이드 자금이 물밀듯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금통위는 지난 9일 기준금리를 동결할 때 해외경제의 불확실성과 국내 부동산시장의 불안을 주로 염두에 뒀는데 이제 글로벌 환율전쟁이 포인트가 될 것이란 게 시장 참가자들의 관측이다. 채권금리는 경우에 따라 사상 최저치를 경신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사상 최저치가 2004년 말의 연 3.24%였는데 현재 수준과 0.2%포인트 차이에 불과하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