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호이겐스가 빛의 파동설을 내놓은 때는 1678년이다. 그러나 뉴턴이 주장한 입자설의 위세에 눌려 과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파동설로 빛의 반사와 굴절은 설명할 수 있지만 빛이 진공속에서도 전파된다는 사실과 관련해서는 입자설이 더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동설은 1801년 토머스 영이 빛의 간섭현상을 관측하고,프레넬이 간섭과 회절현상을 여러 차례 확인하고 나서야 '대접'을 받게 됐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발표 당시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빛이 중력의 영향으로 휜다거나 시간이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등의 파격적 내용이라 과학자들도 반신반의했다. 오죽하면 상대성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논쟁이 벌어졌을까. 뉴욕타임스의 한 기자는 나름대로 근거를 들며 '12명 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상대성이론은 발표된 지 100여년이 지나면서 많은 검증 과정을 거쳤고,실제로 여러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이론으로 남아 있다. 일상에선 관측하기 어려운데다 상식과 다른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시간이다. 보통 시간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는 관계없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일정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위치나 운동속도 등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본다.

미국 표준기술연구소가 초정밀 원자시계를 이용해 시간의 상대성을 실제로 입증했다는 소식이다. 오차가 37억년에 1초 미만일 정도로 정확한 원자시계로 측정했더니 고도가 높을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의 일생을 79년으로 할 때 고도가 1피트(30.48㎝) 높아질 때마다 10억분의 90초씩 빨리 늙는다고 한다. 시계를 지표면에 가까이 놓으면 인력이 더 강하게 작용해 높은 곳보다 시간이 느리게 가기 때문이란다.
실험결과를 실생활에 적용할 경우 요즘 인기 높은 고층 아파트 맨 꼭대기의 펜트하우스보다는 저층에 거주해야 더 오래 산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은 거액을 들여 아슬아슬한 높이에 살면서 수명을 줄이느니 적은 돈으로 1층에서 맘 편히 살라는 메시지를 남긴 셈인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