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9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대 · 중소기업 동반성장보고대회'를 연다. 이로써 그동안 이슈의 한복판에 있던 대 · 중소기업 상생논의가 변곡점을 맞게 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함께 성장시키겠다는 정책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 다만 이번 논의의 출발점으로 돌아가보면 '상생'이 번지 수를 잘못 짚은 게 아닌가 하는 점이 있다.

한국 경제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금융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중소기업이 상대적으로 햇빛을 보지 못한 원인을 들춰보자는 게 이번 논의의 출발점이었다. 일부 중소기업들은 세계 경제 회복과정에서 원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는데 대기업이 그에 맞춰 납품단가를 올려주지 않아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총대를 메고 잇따라 상생대책회의를 열었고,급기야 대기업들은 상생선언을 앞다퉈 발표했다. 이번 주 청와대 회의는 정부가 연출한 '상생 드라마'의 완결편이 공개되는 자리로 볼 수 있다.

상생 논의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데서 첫 단추를 꿰야 한다. 국내 중소기업 가운데 대기업과 거래하는 비중은 14% 수준이다. 많은 수의 중소기업들은 좁디좁은 내수시장에서 다투고 있다. 이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매출 1000억,5000억,1조원짜리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게 '상생무대'가 돼야 한다. 대 · 중소기업 상생은 원론적으로 서로 '윈윈'하는 전략을 추구하도록 하면 된다. 시야를 넓혀보면 은행과 중소기업 간 상생이 더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외환위기를 벗어난 지난 10년 세월은 '은행 리스크'를 덜어가는 과정이었다. 은행은 대형화를 통해 리스크를 줄여나갔지만,위기의 단초를 준 대기업이 스스로 강해지면서 저절로 리스크가 덜어진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 결과 은행이 대기업에 사정(?)하는 희한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돈 빌려가라고.그렇지만 대기업은 사내 유보금으로도 투자와 판매활동을 하는 데 지장이 없다.

이제 은행 입장에선 중소기업이 주요 고객이다. 그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잘 설정하느냐의 여부가 향후 산업구조 고도화 과정에서 리딩 뱅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를 판가름할 것이다. 글로벌 플레이어로 뛸 수 있는 강소기업을 많이 키우는 은행이 1등으로 올라설 것이란 얘기다. 벤처 캐피털은 더이상 창업기업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 은행이 실력을 발휘할 때다. 창업단계의 중소기업이 처음 뿌리를 잘 내리고,거기서 몸통을 키우고,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K사 L사장은 미국 · 중국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준비 중이지만 '부채비율이 높다' '이런 분야엔 돈을 빌려준 적이 없다'는 은행 측 설명을 듣고 난감해 하고 있다. L사장은 "중국은 물론 미국 독일 등 선진국도 신사업 분야에선 특별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는데 우리는 딴청"이라고 볼멘 소리를 한다.

선제적인 투자가 융합시대에 살아남을 벤처기업을 길러낼 수 있다. 은행은 더이상 '웨이팅 비즈니스'에 안주하려 해선 곤란하다. 될성부른 중소기업을 가려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필요할 땐 뭉치지만,은행과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 위기의 중소기업과 은행이 손을 잡도록 만들어 주는 게 유효한 상생정책이 될 수 있다.

남궁덕 과학벤처중기부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