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韜光養晦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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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양회(韜光養晦).칼날의 빛을 칼집 속에 감추고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중국 외교정책을 말할 때마다 등장하는 고사성어다. 하지만 도광양회가 중국 외교의 근간으로 자리한 것은 30년 남짓밖에 안된다. 고대국가 시절부터 청나라 말까지 오랫동안 기미(羈 · 굴레와 고삐) 정책이 중국외교의 방향타였다. 기미란 말이나 소를 부리기 위해 고삐에서 늘어뜨린 끈을 말한다. 다른 나라를 점령해서 집어삼키는 게 아니라 간접적인 통제를 통해 영향권 안에 묶어 놓는다는 게 기미정책이다.
이것을 버리고 도광양회를 택한 것은 덩샤오핑이다. 덩샤오핑이 권력을 잡은 건 1979년이다. 대약진운동의 실패와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중국은 피폐할대로 피폐해 있었다. 반면 주변국인 일본은 선진국이 된 지 오래였고,한국 싱가포르 등은 아시아의 4룡이라 불리며 기세등등했다. 국민들을 굶주리지 않게 하는 게 시급했던 중국의 처지에서 기미정책은 꿈도 못 꿀 처지였다. 절치부심하며 힘을 기르기로 한 것은 대단한 결단이 아니었고,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일 뿐이었다.
2006년 4월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미국 시애틀에서 이백의 시 행로난(行路難)을 통해 와신상담의 고통을 표현했다. 중 · 미우호협회가 주관한 만찬장에서 그는 "길은 험하디 험하다. 굴곡과 갈림길이 있는데 지금은 어디인가. 거센 풍파 이겨내고 때가 되면 돛 높이 걸고 창해를 건너리라"(行路難 行路難/多岐路 今安在/長風破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라고 읊었다.
그러던 중국이 마침내 칼집에서 칼을 뺐다. 그 칼은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를 놓고 영유권 분쟁이 일고 있는 일본을 겨눴다. 장관급 이상의 교류 단절 선언에 이어 희토류 광물의 대일 수출 중단,군사지역을 촬영하던 일본인 4명 체포,도요타자동차의 불법행위 적발 조사,일본 관광중단 등 광풍을 일으키며 칼을 휘둘렀다. 일본은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30년간 어두운 곳에서 길러온 중국의 힘은 무시무시했다.
관심이 쏠리는 대목은 일본을 굴복시킬 만한 힘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한 중국의 다음 수순이다. 기미를 다시 잡으려 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막대한 돈을 뿌려가며 친중국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을 보면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홍콩과 대만은 '1국2제(1개 국가 2개 체제)'로 이미 고삐를 잡았다. 동남아시아국가와는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무역장벽을 없앴고 중국과 베트남 라오스 태국 말레이시아 등을 잇는 철도도 건설 중이다. 지난 1월 FTA가 발효된 뒤 6개월간 아세안 10개국과 중국의 무역액은 1356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55%나 늘어났다.
아프리카에는 돈을 빌려주고 몇 년 있다가 부채를 탕감해주는 극단적 선심정책을 펴가며 중국의 우산을 넓혀가고 있다.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남미지역에도 막대한 지원과 투자로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한국에서도 이젠 공공연히 "중국이 아니면 앞으로 먹고 살기 어렵다"는 말이 나도는 것을 보면 중국을 의식하지 않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문제는 중국의 부상으로 새로운 패권주의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데 있다. 일본은 군사대국화를 지향하게 될지 모른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와 경계를 더욱 강화할 게 분명하다. 한반도는 이들 국가에 둘러싸인 채 두동강이 나 있다. 중국이 30년간 참으며 가슴에 새겼던 도광양회를 이젠 우리가 곱씹어야 하는 게 아닐까.
조주현 베이징 특파원 forest@hankyung.com
이것을 버리고 도광양회를 택한 것은 덩샤오핑이다. 덩샤오핑이 권력을 잡은 건 1979년이다. 대약진운동의 실패와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중국은 피폐할대로 피폐해 있었다. 반면 주변국인 일본은 선진국이 된 지 오래였고,한국 싱가포르 등은 아시아의 4룡이라 불리며 기세등등했다. 국민들을 굶주리지 않게 하는 게 시급했던 중국의 처지에서 기미정책은 꿈도 못 꿀 처지였다. 절치부심하며 힘을 기르기로 한 것은 대단한 결단이 아니었고,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일 뿐이었다.
2006년 4월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미국 시애틀에서 이백의 시 행로난(行路難)을 통해 와신상담의 고통을 표현했다. 중 · 미우호협회가 주관한 만찬장에서 그는 "길은 험하디 험하다. 굴곡과 갈림길이 있는데 지금은 어디인가. 거센 풍파 이겨내고 때가 되면 돛 높이 걸고 창해를 건너리라"(行路難 行路難/多岐路 今安在/長風破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라고 읊었다.
그러던 중국이 마침내 칼집에서 칼을 뺐다. 그 칼은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를 놓고 영유권 분쟁이 일고 있는 일본을 겨눴다. 장관급 이상의 교류 단절 선언에 이어 희토류 광물의 대일 수출 중단,군사지역을 촬영하던 일본인 4명 체포,도요타자동차의 불법행위 적발 조사,일본 관광중단 등 광풍을 일으키며 칼을 휘둘렀다. 일본은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30년간 어두운 곳에서 길러온 중국의 힘은 무시무시했다.
관심이 쏠리는 대목은 일본을 굴복시킬 만한 힘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한 중국의 다음 수순이다. 기미를 다시 잡으려 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막대한 돈을 뿌려가며 친중국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을 보면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홍콩과 대만은 '1국2제(1개 국가 2개 체제)'로 이미 고삐를 잡았다. 동남아시아국가와는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무역장벽을 없앴고 중국과 베트남 라오스 태국 말레이시아 등을 잇는 철도도 건설 중이다. 지난 1월 FTA가 발효된 뒤 6개월간 아세안 10개국과 중국의 무역액은 1356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55%나 늘어났다.
아프리카에는 돈을 빌려주고 몇 년 있다가 부채를 탕감해주는 극단적 선심정책을 펴가며 중국의 우산을 넓혀가고 있다.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남미지역에도 막대한 지원과 투자로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한국에서도 이젠 공공연히 "중국이 아니면 앞으로 먹고 살기 어렵다"는 말이 나도는 것을 보면 중국을 의식하지 않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문제는 중국의 부상으로 새로운 패권주의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데 있다. 일본은 군사대국화를 지향하게 될지 모른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와 경계를 더욱 강화할 게 분명하다. 한반도는 이들 국가에 둘러싸인 채 두동강이 나 있다. 중국이 30년간 참으며 가슴에 새겼던 도광양회를 이젠 우리가 곱씹어야 하는 게 아닐까.
조주현 베이징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