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반도체,에어컨,LNG 운반선, 그리고 위암.'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수수께끼 같기도 하고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정답은 우리나라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008년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위암환자가 많기로 유명한 일본 중국을 제치고 위암발생률 1위를 차지했다.

중앙암등록본부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를 보면 2007년 암발생률이 위암환자의 경우 남자는 10만명당 70.4명으로 모든 암 가운데 20.3%를 차지해 1위였고,여자는 10만명당 30.5명으로 갑상선암 유방암에 이어 3위였다. 위암은 국가 암통계가 발표된 1983년부터 지금까지 암 발생률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위는 식도와 십이지장 사이에 있는 자루 모양의 소화기관으로 점막에 있는 약 3500만개의 분비세포들이 위산 및 가스트린(위산분비 및 위장관운동을 촉진하는 호르몬) 등을 분비한다. 소화기관의 최전방에서 음식물과 함께 들어온 각종 이물질,세균,발암물질과 가장 먼저 그리고 오랫동안 접촉하면서 창이나 방패가 돼 우리 몸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위암은 위점막상피세포에서 생기는 악성종양으로 정확하게는 위선암이다. 여러 요인에 의해 위점막상피세포가 수년에 걸쳐 변화되면 만성위염,장화생(위점막세포가 소장점막세포의 기능과 모양을 갖는 것),조기위암을 거쳐 진행성 위암으로 악화된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에게 유독 위암 발병률이 높을까. 이는 한국인의 식습관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고된 회사 일을 마치고 저녁에 동료들과 함께 회식하게 되면 불판에 올린 등심,삼겹살,숯불갈비와 함께 김치,된장에 찍은 고추를 먹게 되고 술도 한잔 걸치게 마련이다. 마무리로 된장찌개에 밥 한 공기를 먹고 음주 뒤 담배도 몇 개비 피우게 된다.

문제는 된장 간장 김치 젓갈 등 즐겨먹는 반찬에 소금이 다량 들어 있다는 점이다. 세계암연구재단은 암예방 수칙의 하나로 하루에 5g 미만의 소금섭취를 권장하지만 한국인은 하루 평균 12.5g을 먹어 권고량의 2.5배 이상을 섭취하고 있다. 소금은 발암물질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과다 섭취하면 위염을 유발하고 위점막을 손상시켜 위 속 발암물질의 작용을 돕게 된다. 더욱이 질산염이 많이 든 채소를 소금과 젓갈에 절여먹는 과정에서 장내세균에 의해 니트로소아민이란 발암물질이 나온다.

또 고기나 생선의 불에 탄 부위에는 이종방향족환상아민(HCA)이란 발암물질이 다량 포함돼 있다. 지나친 음주는 위점막을 자극해 급 · 만성 위염이나 출혈 등을 일으키고,흡연은 담배연기 속에 포함된 발암물질이 위암의 원인이 될 뿐아니라 흡연 자체가 위산 분비를 증가시켜 위점막 손상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찌개나 국물을 숟가락으로 같이 떠먹는 것도 위암을 일으키는 원인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의 전파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인의 헬리코박터 감염률은 1990년대 말 65%에서 최근에 40% 이하로 낮아졌다. 이 균은 위암의 전단계인 위축성 위염,장화생을 야기해 위암 발생률을 3배 정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식습관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위암을 예방하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도 위암을 100% 예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조기 발견해 치료함으로써 완치하는 '2차 예방'이 중요하다. 수술은 완치의 유일한 방법이며 병변의 위치에 따라 위부분절제술 또는 위전부절제술을 시행한다. 진행성 위암일 경우 수술 후 보조항암화학요법을 한다.

위암은 병기에 따라 확연한 생존율 차이를 보인다. 1987년부터 2006년까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받은 조기 위암(1기) 환자의 5년 생존율은 93%에 달했다. 하지만 2기,3기,4기 등 암이 진행될수록 생존율은 75%,49%,11%로 급격히 떨어졌다. 조기 위암일 때 진단을 받는다면 수술적 치료로 90%이상 완치될 수 있다. 더욱이 조기위암은 과거처럼 개복수술을 하지 않고 내시경적 절제술,복강경 위절제술,로봇 위절제술로 흉터와 후유증 없이 치료해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암과 마찬가지로 위암도 어느 정도 암이 진행돼야 증상이 나타난다. 위암 환자중 15%는 진단 당시 아무런 증상이 없기 때문에 소화불량 체중감소 구역 구토 토혈 등의 증상이 나타난 후에 검사한다면 이미 너무 늦을 가능성이 높다. 위암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검진이기 때문에 정부는 1999년부터 암 조기검진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위암은 만40세 이상의 성인이 2년마다 위내시경 또는 위장조영검사를 받도록 권장된다. 실제로 이 사업을 통해 많은 환자들이 위암을 조기 발견해 치료받았다. 1990년에 전체 위암 환자 중에 조기위암이 약 25%였으나 2005년에는 50%로 높아졌으며 이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최근에는 40대 이전의 젊은 연령층에서도 위암환자가 증가하고 있어 40세 이전이라도 이상 증상이 있거나 위암 가족력이 있는 고위험군은 정기적인 위내시경 검사를 받도록 권장되고 있다. 위암은 여전히 한국인에게 가장 많은 암이지만 최근 10년 새 가장 많이 줄어든 암이기도 하다.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소금에 절인 음식을 덜 먹게 되고 조기진단이 늘어난 덕택이다. 위암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치료율을 보이고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조기발견에 나서야 한다.

노성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