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으로 온 사장 조카…배알없이 다 해줬는데 어느날 사표
낙하산에도 등급이 있다
남들처럼 성실하게 일한 安대리…알고보니 사장 아들 '괜찮은데…'
똥돼지 신드롬을 지켜보는 김 과장,이 대리의 마음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튼튼한 동아줄은커녕 썩은 지푸라기줄조차 없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저 사람 어떻게 회사에 입사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낙하산스러운' 선후배들도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 눈 감으면서 자신의 일만을 묵묵히 해나가는 게 김 과장,이 대리의 모습이다.
◆오너의 친인척이 낙하산?
중견기업에 다니는 박모 과장(35)은 작년 초 신입사원을 부사수로 받았다. 부장은 "능력이 출중한 친구이니 일을 잘 가르치라"며 특별히 당부했다. 신입사원의 스펙은 화려했다. 대학과 대학원을 미국에서 나왔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언변도 뛰어났다. '이런 친구가 왜 대기업에 가지 않고 여기에 왔을까'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펙과 어울리지 않는 능력이 드러났다. 문서작성은 왕초보였다. 프레젠테이션도 엉망이었다. 어떻게 경영학석사(MBA)를 받았을까 싶었다.
박 과장은 신입사원을 강하게 다뤘다. 잠재능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부장이 박 과장을 호출했다. 부장은 넌지시 "그 친구가 누구인지 알아? 오너 친조카야"라고 귀띔해 줬다. 박 과장이 신입사원을 너무 심하게 다루자 '천기'를 누설한 것이었다. 박 과장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덜컹했다"면서 "모른 척하고 계속 심하게 다루려고 했으나 강도는 턱없이 약해지고 말았다"고 털어놨다. ◆낙하산의 다양한 착륙 루트
낙하산 착륙 작전은 서류 전형부터 시작한다. 서류 전형 과정에서 '모 기업 사장 딸 ◆◆◆양이 지원서를 낸 모양이니 잘 살펴봐라'는 언질을 받는다. 서류전형은 무사통과다. 문제는 인 · 적성 검사.한 중견기업의 인사팀 관계자는 "인 · 적성 검사만큼은 본인이 직접 문제를 푸는 만큼 답을 조작한다거나 점수가 형편없는 사람을 통과시켜줄 순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그는 "낙하산도 낙하산을 펼 만한 사람에게 준다"며 "적성은 그렇다쳐도 인성평가에서 점수가 과락 수준이면 아무리 부모 '빽'이 좋더라도 뽑기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물론 인 · 적성 검사만 통과하면 면접은 일사천리다.
50대 중반에 고위 임원에 오르는 사람의 경우 자녀들이 그 때 취업시기를 맞는다. 따라서 인사 청탁은 부지기수로 이뤄진다. 대기업의 한 인사팀장은 "대기업은 계열사 임원이나 고객사 사장,해당 기업 고위 임원 자녀들이 낙하산으로 가장 많이 들어오고,최근에는 인턴으로 들어와 정규직으로 눌러앉는 낙하산도 많다"며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 자녀가 입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부자 거래'만큼 빈번하지는 않다"고 전했다. ◆인턴은 낙하산 예비부대?
인턴일수록 낙하산 입사가 많다. 인사팀 입장에서는 정직원을 채용하는 것도 아니고 단기 인턴이기 때문에 인사 청탁을 거절하기도 어렵다. 웬만한 대기업의 경우 인턴 모집인원 수보다 더 많은 수의 인사청탁이 들어온다는 것은 정설처럼 굳어진 얘기다.
무개념의 황당한 인턴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국내 한 중견기업의 마케팅팀은 3개월 전 부서에 배치된 캐나다 교포출신의 낙하산 인턴사원 한 명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낙하산 중 가장 '약발'이 센 사장님 낙하산인 그는 기본적인 정시 출 · 퇴근도 지키지 않는다. 별의별 이유를 대며 걸핏하면 조퇴를 한다. 여름 휴가 직후엔 "캐나다에서 가지고 오지 못한 짐이 있다"며 1주일간 휴가를 달라고 졸라 팀원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줄 잘못 선 거 아냐?
낙하산 동료가 오너 친인척이라면 친해져서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정보기술(IT)회사에 다니는 김모 과장(38)은 한 때 이런 생각을 했다가 낭패를 봤다. 새로온 동갑내기 팀장은 자수성가한 오너 사장의 5촌 조카였다. 그는 생각보다 일도 잘하고,겸손하기까지 했다. 빨리 친해질 방법을 궁리하다 내린 결론은 골프동호회.IT업계 총각 사원들끼리 한 달에 한 번씩 1박2일로 지방 원정가는 모임에 팀장을 소개했다. 팀장은 동호회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등 열성을 보였다.
하지만 얼마 안가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술만 먹으면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셔야 한다던가,2차는 꼭 최고급 가라오케를 고집했다. 문제는 술값과 골프비 등을 한번도 낸 적이 없다는 점이다. 팀장이 내야 할 비용은 김 과장이 모두 떠안아야 했다.
이런 투자는 10개월 만에 물거품이 됐다. 정기인사에서 사장의 둘째딸이 마케팅 담당 임원으로 전격 배치됐다. 믿었던 팀장은 사표를 냈다. 김 과장은 "닭 쫓던 뭐가 된 기분"이라고 씁쓸해 했다.
◆티 안나는 낙하산
아무리 낙하산이라도 티가 안나는 경우도 있다. 낙하산 소문이 도는 것은 연수 기간 동기들이나 인사 담당자를 통해,아니면 첫 부서를 발령받아 팀장 과장들이 '호구조사'를 할 때다. 대기업 마케팅에 다니는 안 대리(31)도 그런 경우다. 연수 시절까지 그가 낙하산이란 걸 아는 사람은 인사담당자 외에는 없었다. 그러다 부서를 배치받은 후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안 대리가 계열사 사장의 아들이다더라"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놀란 것은 안 대리보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었다. 안 대리가 워낙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회사 동료는 "낙하산이라도 안 대리 같은 사람은 회사에서 모셔와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반대로 낙하산이란 오해를 받아 마음고생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순전히 자신이 쌓은 스펙으로 당당히 대기업에 입사한 조모씨(28).그 회사의 임원인 친구 아버지를 만나 인사하는 모습을 우연히 주변 동료들이 보면서 낙하산 의혹을 받았다. 조씨는 "동기의 귀띔을 듣고 낙하산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며 "부서 회식 때 전후사정을 얘기해 의혹을 깨끗이 씻었지만 여전히 기분은 찜찜하다"고 웃었다.
◆결혼 스펙용으로 펼치는 낙하산
한 소비재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그 회사의 '슈퍼 갑'인 모 정부부처의 고위 공무원이 강연을 했다. 강연을 마친 후 그는 인사 담당자에게 "우리 딸이 미국에 가고 싶어 하는데…"라고 여운을 남겼다. 이후 고위 공무원의 딸은 특채 전형으로 그 회사에 입사했다. 주재원으로 발령나지는 않았지만 2년을 다니다 좋은 집안의 남성과 결혼한 뒤 회사를 그만뒀다.
이 회사 인사팀장은 "있는 집 여성 낙하산의 경우 1~2년간 회사를 다니다 전문직 남성과 결혼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곤 한다"며 "그럴 듯한 직업이 없으면 좋은 집안에서 며느리로 안 들이려고 하니 결혼 스펙용으로 회사에 다니는 경우"라고 말했다.
이정호/이관우/김동윤/강유현 기자 dolph@hankyung.com
▼이 기사는 독자 'kangset309'님의 아이디어 제공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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