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의 청소용품 제조업체 리빙휴.이 회사는 2002년까지만 해도 밀대 등을 만들어 재래시장에 내다파는 전형적인 영세 중소기업이었다. 직원 수 6명에 연간 매출은 4억원에 불과했다. 김상구 대표의 머릿속엔 '이달엔 납품대금을 떼이지 않아야 할 텐데…'란 걱정만 가득했을 뿐 품질 개선이나 신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 · 개발(R&D)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랬던 리빙휴에 '신세계'가 열린 건 2003년이었다. 이마트가 리빙휴를 청소용품 분야의 직거래 협력업체로 지정하면서 '안정적인 판로 확보와 매출 · 영업이익 증가,R&D 투자 확대,품질 개선 및 신제품 개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갖췄다. 이 회사가 작년 하반기 이마트와 공동 기획해 만든 회전식 탈수 걸레인 '스마트 스핀'은 올 상반기에 60억원어치나 팔리며 이마트의 전체 가정용품 부문 판매 1위에 올랐다.

김 대표는 "올해 예상 매출이 120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마트와 인연을 맺은 지 8년 만에 외형이 30배나 커진 셈"이라며 "직원 수도 30명으로 늘면서 청소용품 업체로는 드물게 별도의 R&D 조직까지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술력은 있지만 판로가 막혀 고전하던 중소기업들이 대형마트와 손잡으면서 '대박'을 터뜨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대형마트에 제품을 진열하는 것만으로도 낮은 신뢰도와 부족한 마케팅 능력을 보완할 수 있고,대형마트는 중기와의 협력을 통해 경쟁력의 원천인 '낮은 가격'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윈-윈'이다.

이마트는 그동안 네 차례 진행한 '중소기업 초청 박람회'를 통해 280여개 중기를 신규 협력업체로 지정,이들과 함께 신제품 개발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실력을 검증받은 중소기업과 공동 기획한 제품을 앞으로 대거 내놓을 계획"이라며 "국내에서 검증된 중기 제품에 대해선 중국 이마트에서도 판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도 중소기업들의 '장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유자차와 꿀 등을 생산하는 꽃샘종합식품이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는 1997년 홈플러스와 인연을 맺으면서 20억원 안팎이던 매출이 지난해 210억원으로 뛰었다. 홈플러스의 모기업인 영국 테스코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타고 중국 테스코 67개 매장에도 진출했다. 이 밖에 1999년 거래를 튼 전기장판 제조업체 보국전자는 1998년 30억원에 그쳤던 매출이 지난해 250억원으로 늘었고,1998년 매출 2억원 수준이었던 인스턴트 커피 제조업체 ISC는 홈플러스와 거래한 지 10년 만인 지난해 매출 100억원 기업으로 성장했다.

인기 아동복 브랜드인 '모노블랙'을 운영하는 토토키드는 롯데마트 덕분에 '대박' 반열에 올랐다. 2005년 롯데마트 매장에 들어간 뒤 전년 12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68억원으로 불었다.

한정애 토토키드 사장은 "당시 롯데마트에 빨강 파랑 노랑 등 원색 아동복만 전시돼 있는 것을 보고 '블랙&화이트' 컨셉트의 모노블랙을 입점시켜 달라고 요청했다"며 "롯데마트가 자리를 내어준 덕분에 이제 대형마트는 물론 백화점과 아울렛에서도 판매되는 브랜드로 성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