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투자가 조지 소로스는 최근 한 중국 기업의 3대 주주가 됐다. 수익률 면에서 헤지펀드계 최고라는 그가 베팅한 기업은 중국의 기업 간(B2B)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닷컴(www.alibaba.com)이다. 알리바바닷컴 모기업인 알리바바그룹의 최대주주 야후는 "알리바바그룹 지분은 지금까지 해온 가장 가치있는 투자 중 하나"라며 지분을 되사려는 알리바바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10년 전 중국 저장(浙江)성 항저우의 한 아파트에서 18명으로 시작한 알리바바닷컴이 그룹의 모체다. 알리바바닷컴은 지난 6월 기준 240개국 5300만여개 회원사를 보유한 세계 최대 B2B 전자상거래 업체로 성장했다. 2003년 설립된 온라인쇼핑몰 자회사 타오바오닷컴은 3년도 안 돼 미국의 이베이를 중국 시장에서 몰아내고 점유율 80%의 독보적인 기업으로 우뚝 섰다. 결제 서비스 자회사인 알리페이도 지난해 이용자 수가 2억명을 돌파,미국 페이팔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전문가들은 알리바바의 도전이 매번 성공을 거두는 비결로 '철저한 시장분석과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대응능력'을 꼽는다. '100년 기업'을 목표로 최고경영자(CEO)부터 말단 직원까지 하나의 생각을 공유하는 가치관 경영도 지속적인 고성장을 뒷받침한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에 답이 있다"

항저우에 있는 알리바바그룹 본사 6층에 가면 2층 높이의 벽면을 가득 채운 초대형 전광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데이터모니터링센터'가 있는 곳으로 30초 단위로 시장 상황을 하루 24시간 모니터링한다. 전광판 중간에 자리잡은 세계 지도에는 알리바바닷컴에 가입한 전 세계 기업 회원들의 주문이 표시된다. 왼쪽의 중국 지도에는 성(省)별 접속자 수가,오른쪽에는 인터넷상에서 검색되고 있는 단어가 실시간으로 지나간다.

하단에는 분 단위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상위 7개 물품 리스트가 뜬다. 지역별로 접속자 수에 따라 빨간색과 노란색 등으로 색을 달리해 어느 곳에서 구매가 많이 이뤄지는지도 한눈에 파악하도록 했다. 알리바바그룹은 이곳에서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지역별 보고서를 만들어 전략을 차별화한다.

알리바바가 시장 분석에 공을 들이는 것은 시장에 성공으로 가는 길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타오바오닷컴이 중국 온라인 쇼핑시장에 도전장을 내밀 당시 무모하다는 목소리가 컸다. 선발업체에 유리한 인터넷 시장에서 이미 90%를 점유한 이베이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이베이는 게다가 월등한 자금력과 미국에서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까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저렴한 가격에 유난히 민감한 중국 소비자층을 겨냥해 '수수료 무료'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웠다. 반면 이베이의 중국 사업자인 이치넷은 "공짜는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다"며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하다 3년 만에 중국 시장을 떠나야 했다. "시장을 이해하지 못한 IT 공룡의 대패"(월스트리트저널),"골리앗을 무찌른 다윗"(신화통신)이란 찬사가 쏟아졌다.

◆'역발상의 지혜'

금융위기로 수많은 중소기업이 쓰러졌던 2008~2009년은 알리바바닷컴에도 최대 위기였다. 그러나 이 회사는 '역발상의 지혜'를 발휘해 위기를 기회로 뒤바꿨다.

경쟁사들은 불황으로 사업을 축소했지만 마윈 회장은 3000만달러를 들여 미국 유럽 아시아에서 대대적인 마케팅을 실시했다. 기업들의 비용 절감이 절실해지면서 돈이 덜 드는 전자상거래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수익을 위해서는 유료 회원인 판매자를 먼저 확보하는 게 일반적이지만,알리바바닷컴의 마케팅은 바이어에 집중했다. 덕분에 전체 회원의 90%를 바이어로 채울 수 있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물건을 사고자 하는 바이어가 많으니 불황 속에서도 자연히 더 많은 판매자들이 모여들었고,거래도 활성화됐다. 2008년 순이익은 전년 대비 95%나 급증한 12억위안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매출이 39억위안으로 전년보다 30% 늘었다.

알리바바닷컴이 세계 기업들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때도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가 중국을 강타해 위기감이 돌던 2003년이다. 당시 직원 한 명이 사스 환자로 드러나면서 회사 전체가 봉쇄되는 위기를 맞았지만,모든 직원의 집에 인터넷을 설치하고 영업을 계속했다. 인터넷이 보편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파격적인 투자였다. 알리바바는 또 미국 CNBC에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사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중국 기업들과 직접 거래를 멈춘 외국 기업들이 온라인 등 다른 거래수단을 찾는 시점에 나온 광고라 효과가 컸다.

◆"직원 업무역량보다 가치관을 중시"

알리바바는 '중소기업이 비즈니스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최고 가치로 여긴다. 직원을 평가할 때 50%의 비중은 가치관 항목에 두며,조직의 사업 확장부터 전략 수립까지 가치관을 기반으로 한다. 100년 이상 존속하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의 가치를 공유하는 직원들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 마 회장의 신념이다. 평가 결과 업무능력이 떨어지면 재교육을 통해 역량을 키우지만,가치관이 잘못돼 있으면 무조건 해고다.

알리바바는 가치관 경영으로 고객 증가와 매출 확대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도도 높였다. IT 업계의 평균 이직률이 10%가 넘는 상황에서 알리바바는 이직률이 3%를 밑돈다.

마 회장은 B2B 시장뿐 아니라 B2C(기업과 소비자) 및 C2C(소비자 간)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도 세계 일류가 되는 알리바바 제국을 세운다는 게 목표다. 최근 몇 달 새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인 벤디오서비스와 옥티바를 인수하고,세계 최대 택배업체인 UPS와 제휴한 것도 그런 전략에서다. 창업 10년 만에 전자상거래 성공 모델을 만든 알리바바가 또 다른 비상을 준비 중이다.

항저우=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