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업계가 결국 지상파 방송 재전송 전면 중단이라는 초강수 카드를 빼들었다. 시청자들의 혼란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송광고 재전송 중단→방송채널 재전송 중단'이라는 수순을 밟기로 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이용약관 변경 승인이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연말께 일반 가정의 상당수가 지상파 방송을 시청할 수 없는 초유의 방송대란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상파 재전송 전면 중단 초읽기

케이블TV업계가 KBS2 MBC SBS 등 지상파 3개 채널의 재전송을 중단키로 결정한 것은 지난 8일 케이블방송이 지상파 3사의 동시중계 방송권을 침해했다는 법원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다. 법원이 지상파 방송 재전송에 대해 불법 판정을 내린 만큼 재전송료를 요구하는 지상파 방송사의 방송 프로그램을 더 이상 서비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성기현 케이블TV방송협회 사무총장은 "유료화를 전제로 하는 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상파 방송사가 재전송료 요구를 철회하지 않는 한 지상파 재전송 중단을 밀어붙이겠다는 얘기다.

케이블TV 업계는 이용약관 변경 승인이라는 적법 절차를 밟아 지상파 방송 재전송 중단을 단행키로 결정,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이용약관 변경 승인 시한이 60일이어서 이 기간에 케이블TV와 지상파 방송이 극적인 타결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다음 달 1일부터 법적 하자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 광고 재전송 중단으로 지상파를 압박한다는 전략이다.

방통위는 "시청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양측이 합의할 수 있는 중재안을 내놓겠다"며 최악의 상황은 막겠다는 입장이다. 방통위는 28일 양측 대표들을 불러 협상을 유도할 방침이다.

◆왜 여기까지 왔나

케이블TV업계가 초강수 카드를 선택한 이유는 더 이상 지상파 방송사의 횡포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인식에서다. 1995년 케이블TV 출범 당시 정부가 난시청 해소를 명분으로 지상파 방송 재전송을 사실상 의무화했다. 그런데 저작권료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한 지상파의 손을 들어준 법원 판결은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는 게 케이블TV업계의 주장이다.

게다가 지상파 방송사들은 보편적 시청권을 내세워 모든 국민이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있어야 한다며 케이블TV에 재전송을 요구해 왔다. 1500만 케이블TV 가입자를 상대로 방송광고 수익도 올렸다. 지상파 3사는 지난해 전체 방송광고시장의 74.1%인 2조850억원의 광고수익을 거뒀다. 5개 홈쇼핑채널이 지난해 케이블TV업체에 총 3850억원의 송출 수수료를 낸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상파 방송사들은 케이블TV와의 광고수익 배분을 거부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일반 가정에서 TV안테나로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시설 투자를 게을리한 것이 전국적인 방송대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당수 세대에서 케이블TV 없이는 지상파 방송을 시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통위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파트의 46.1%,연립주택의 8.2%,단독주택의 12.6%에서만 지상파 방송 직접수신이 가능하다.

◆지상파 광고수익 타격 불가피

방송광고시장의 85%를 점유하고 있는 한국광고주협회는 케이블TV에서 광고 재전송이 안될 경우 지상파 3사에 보상방안을 요구할 방침이다. 협회 운영위원회와 광고주 측은 28일 이 사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협회 고위 관계자는 "1500만 케이블TV 방송 세대에 광고가 송출되지 않는다면 전체 광고의 80% 정도가 전달되지 않는 셈"이라며 "재전송 중단으로 인한 피해 금액을 산출한 뒤 지상파 측과 보상책을 다각도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광고 요금을 대폭 삭감하는 방안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박영태/유재혁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