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과 음악.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헌법에 '모든 국민은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조항이 담긴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필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빈민층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침으로써 음악의 힘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실현한 베네수엘라다.

이 나라는 35년 전만 하더라도 마약과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위험한 곳이었다. 발전이라고는 꿈꿀 수 없었던 이곳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전과범 소년을 포함한 거리의 아이들 11명에게 총 대신 악기를 들게 하면서부터다. 들리는 것은 총소리뿐이던 빈민가에서 아이들은 난생 처음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작았지만 그 반향은 엄청났다. 아이들 11명의 아름다운 변화는 베네수엘라 전역에 음악 교육을 담당하는 '엘 시스테마(El Sistema)' 센터를 지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차고에서 시작된 음악교실은 베네수엘라 전역에 200개의 센터가 됐고 지금까지 엘 시스테마 프로그램에 30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

현재 LA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이자 '차세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구스타보 두다멜,베를린 오케스트라 최연소 입단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에딕손 루이스 등 엘 시스테마 출신 음악가들이 세계 클래식계에도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두다멜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엘 시스테마에서 배운 것은 음악을 통한 성공의 길이 아니라,삶을 대하는 태도였다"며 음악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전한 바 있다.

'엘 시스테마' 스토리는 그 자체가 한편의 영화와 같다. 꿈꾸는 힘을 상실한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내일의 희망을 그릴 수 있게 됐다. 엘 시스테마는 가난과 폭력이 일상이던 아이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꿈과 기회,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줬다. 이렇게 음악은 개인의 삶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고,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힘이 있다. 필자도 음악이 가진 긍정과 희망의 힘을 믿는다. 클래식 선율을 통해 환자들의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자 시작한 '강동석의 희망콘서트'를 지난 10년간 진행해 온 것도 이런 믿음에서였다. 희망콘서트는 음악이 가진 소통의 힘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 가운데 이뤄진 크고 작은 변화는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이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저소득층 및 요보호 어린이(보호자가 없거나 키울 능력이 없는 18세 미만 어린이)들을 위한 희망콘서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보다 안전한 환경 속에서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신감을 갖고 자랄 수 있도록 '희망도우미'로서 작은 정성을 보태고자 함이다. 우리나라도 여전히 보호받아야 하는 아동이 많고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회와 희망'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일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멋진 변화가 우리나라에서도 실현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김진호 < GSK한국법인 대표 Jin-ho.kim@gsk.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