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HR Forum 2010] 먼델 교수는 괴짜…논쟁에서 밀리면 "노벨상 타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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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貨의 아버지' 먼델에게 듣는 유로존의 미래
노벨 상금은 '먼델城' 수리하는데 사용
78세 고령에도 여전히 '뉴스메이커'
노벨 상금은 '먼델城' 수리하는데 사용
78세 고령에도 여전히 '뉴스메이커'
로버트 먼델 컬럼비아대 교수는 국제경제학을 개척한 최고의 석학으로 손꼽히지만 미국 유명 토크쇼에 출연하는가 하면 이탈리아에 큰 성(城)을 소유하고 있는 등 학자답지 않은 낭만적인 면모로도 유명하다.
그가 2002년 미국 CBS 방송의 간판 토크쇼인 데이비드 레터맨쇼에 출연해 밝힌 '노벨상을 받고 난 뒤의 10가지 변화'는 아직까지도 미국인들 사이에서 회자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어떤 논쟁도 '노벨상 받아봤어?'라는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다" "허튼소리를 해도 다음 날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다" 등으로 이뤄진 이 리스트는 그의 빛나는 유머와 재치를 잘 보여준다.
먼델 교수는 199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으로 받은 97만5000달러를 어디에 썼을까. 정답은 성(城)이다. 그는 이탈리아 시에나 지방에 12세기 무렵 지어진 성을 갖고 있다. 브레턴 우즈 체제가 흔들리던 1969년 인플레이션 헤지용으로 2만달러를 주고 샀다. 이름도 '먼델 성'(Palazzo Mundell)으로 붙였다. 1970년부터 매년 이곳에서 학술 콘퍼런스를 열고 있으며 오페라단을 초청,관람하기도 한다.
노벨 상금의 대부분은 이 성에 전기와 수도시설을 설치하는 등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데 들어갔다. 그럼에도 리모델링은 75%밖에 완성되지 못했다. 그는 "이 정도면 됐다"며 "나머지는 다음 세대(그의 아이들)에서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먼델 교수는 1932년생으로 올해 78세의 고령이지만 1994년 한 파티장에서 만난 20년 연하의 시인 발레리 나초와 재혼,열두 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다. 그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있는 킹스턴에서 태어나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대와 MIT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1956년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4년부터는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대에서 30년 가까이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계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61년부터 3년간 IMF 조사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이를 계기로 40년 가까이 고문역을 맡았다. 세계은행(IBRD) 국제연합(UN) 유럽공동체 중남미국가 캐나다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재무부 등에서도 고문역 또는 자문관으로 활약했다.
포럼 참가신청 및 문의 (02)360 4088~9 www.ghrforum.org
그가 2002년 미국 CBS 방송의 간판 토크쇼인 데이비드 레터맨쇼에 출연해 밝힌 '노벨상을 받고 난 뒤의 10가지 변화'는 아직까지도 미국인들 사이에서 회자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어떤 논쟁도 '노벨상 받아봤어?'라는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다" "허튼소리를 해도 다음 날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다" 등으로 이뤄진 이 리스트는 그의 빛나는 유머와 재치를 잘 보여준다.
먼델 교수는 199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으로 받은 97만5000달러를 어디에 썼을까. 정답은 성(城)이다. 그는 이탈리아 시에나 지방에 12세기 무렵 지어진 성을 갖고 있다. 브레턴 우즈 체제가 흔들리던 1969년 인플레이션 헤지용으로 2만달러를 주고 샀다. 이름도 '먼델 성'(Palazzo Mundell)으로 붙였다. 1970년부터 매년 이곳에서 학술 콘퍼런스를 열고 있으며 오페라단을 초청,관람하기도 한다.
노벨 상금의 대부분은 이 성에 전기와 수도시설을 설치하는 등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데 들어갔다. 그럼에도 리모델링은 75%밖에 완성되지 못했다. 그는 "이 정도면 됐다"며 "나머지는 다음 세대(그의 아이들)에서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먼델 교수는 1932년생으로 올해 78세의 고령이지만 1994년 한 파티장에서 만난 20년 연하의 시인 발레리 나초와 재혼,열두 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다. 그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있는 킹스턴에서 태어나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대와 MIT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1956년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4년부터는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대에서 30년 가까이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계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61년부터 3년간 IMF 조사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이를 계기로 40년 가까이 고문역을 맡았다. 세계은행(IBRD) 국제연합(UN) 유럽공동체 중남미국가 캐나다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재무부 등에서도 고문역 또는 자문관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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