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통일 당시 동독의 경제력을 과대평가했고,풍족한 서독에서나 유지될 수 있는 사회보장정책을 그대로 낙후된 동독사회에 적용하는 오류를 범했다. 한국은 독일이 범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통일에 대해 현실적이고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

한스 울리히 자이트 주한 독일대사(58 · 사진)는 29일 독일 통일 20주년을 기념해 서울 한남동 독일대사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통일과 관련해 한국은 이념에 휩싸이지 말고 현실적이고,실용적이며 건설적인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년 전 독일 통일 과정에서 발생했던 갖가지 문제점에 대해 한국이 주도면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 것이다. 3대 세습이 진행 중인 북한에 대해선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이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반면 북한은 여전히 고립된 폐쇄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 최고권력자 권력승계와 맞물려 주요 변수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자이트 대사는 "통일 전 서독은 동독의 경제력을 세계 7~8위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오판했지만 실상 동독경제는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독의 실업보험과 건강보험,연금보험 등 사회복지정책을 그대로 동독지역에 적용하면서 통일비용이 급증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이 성공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선 북한의 경제상황을 올바로 판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국가의 재통합이나 한쪽을 편입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이트 대사는 현재의 북한 경제 수준과 관련, "올초 북한을 방문해 보니 서울에서 불과 40㎞만 북쪽으로 올라가도 소가 달구지를 끄는 수준의 경제상태에 불과했지만 성장 잠재력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조림사업 등 남북한 간 협력이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도 많다"고 진단했다.

한국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해 자이트 대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통일세는 굉장히 설득력 있고 현실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한다"며 "제2 개성공단 얘기도 매우 실용적인 접근방식인 만큼 이 같은 것들이 점진적 노력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권력세습 움직임에 대해 "단순한 가족 내 인물들의 지위 및 역할과 관련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반도 주변 지역 상황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북한 내에서도 중국에서 유입된 휴대폰이 통용되는 등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이 북한 지도층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이트 대사는 "과거 서독이 동독과 협력을 강화할 때도 서독은 상호주의 원칙을 고수하려 했지만 동독은 이득만 얻고 대가는 가능한 한 지불하려 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당시 서독은 '동독의 체제변화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 동독이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을 했고,동독이 당장 경제적 부담이 없는 분야에서부터 양보하도록 해 변화를 일으키는 정책을 썼다"고 조언했다.

한편 독일대사관은 내달 7일 대사관저에서 통일 20주년 기념식을 갖고,한국전쟁 직후 부산독일적십자병원에서 의료활동을 했던 70~80대 한국인 의사와 간호사 40여명을 초청하는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독일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앞선 의료기기를 갖춘 병원과 의료인력을 지원,5년간 27만여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