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에 본격 나섰다. 현대상선이 보유한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넘겨 의결권을 되살리는 방식이다. 현대상선 지분 8.30%를 쥐고 있는 현대건설 인수에 실패할 경우 불거질 수 있는 경영권 분쟁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2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자사주 457만주(오는 12월 상환우선주 1000만주 소각 후 기준 3.19%) 가운데 90만주(0.62%)를 우호세력인 넥스젠캐피털에 매각했다. 프랑스 나타시은행 계열인 넥스젠은 현대그룹의 우호세력으로,이번 자사주 매입에 따라 현대상선 지분을 621만주(4.34%)로 늘렸다. 강성진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의결권이 제한된 자사주를 제3자에 넘겨 의결권을 살리는 것이어서 현대상선에 대한 현대그룹의 경영권 방어 성격이 짙다"고 진단했다.

현대상선은 자사주를 추가로 매각할 것이란 관측이다. 자사주 매각 직전인 지난 20일 현대상선의 대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는 넥스젠과 현대상선 주식 270만주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총 3건의 주식스와프거래(각 90만주)를 맺었다. 현대상선 주식 매입 원금을 보장해주는 대신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신규 파생계약 규모가 270만주라는 점에서 현대상선은 자사주 90만주를 1차로 매각한 데 이어 180만주를 추가로 넥스젠에 넘길 것이란 게 증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 같은 방식을 이용해 나머지 자사주 367만주(2.56%)를 모두 넘겨 의결권을 살린다면 현대그룹 측 현대상선 지분은 총 42.33%까지 확대된다. 현대그룹이 현대상선 지분을 확대하는 이유는 현대건설 인수에 실패하더라도 경영권이 불안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현대건설은 현대상선 지분 8.30%를 보유,현대차그룹에 인수될 경우 범현대가 지분이 현대그룹 측 지분과 대등해지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그룹과 현대차그룹,KCC 등 범현대가 지분은 현재 32.29%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한다면 범현대가 지분이 40.59%까지 치솟게 된다. 이 같은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현대상선은 지난 24,27일 연속 상한가로 뛰기도 했다.

현대상선이 4년 전 발행한 의결권이 있는 상환우선주 1000만주를 오는 12월 소각하게 되면 현대그룹 지분이 현재 40.76%에서 39.77%로 떨어지는 점도 자사주 매각을 서두르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현대중공업그룹 측은 우선주 소각 이후에도 지분율 변화가 거의 없지만 현대그룹은 지분율이 1%포인트가량 떨어진다. 하나은행 우리은행 산은캐피탈 등 우호세력들의 우선주 보유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대그룹이 넥스젠,케이프포천 등 우호세력과 맺은 파생계약이 내년 5월부터 순차적으로 만기가 돌아오는 데다 내년 12월에는 나머지 상환우선주 1000만주도 추가 소각될 예정이어서 현대건설 인수전에 앞서 현대그룹이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