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만에 열린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권력 실세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뤄졌다. 핵심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공식화된 김정은의 친정체제 구축이다.

우선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하게 될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경희 등 '핏줄'들이 당 핵심 요직에 선출됐다.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김경희 남편) 국방위 부위원장은 그동안 당에서 비서국 행정부장직만 맡아왔지만 이번에 당 중앙위원에 선출된 데 이어 정치국 후보위원과 중앙군사위 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군에 이어 당 내에서도 그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측근인 최룡해(전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는 비서국 비서,정치국 후보위원,중안군사위 위원에 임명됐다.


당 비서국 경공업부장인 김경희는 '대장칭호'를 부여받은 후 당 중앙위원에 선출됨과 동시에 당의 최고 지도기관인 정치국 위원 자리를 꿰찼다. 건강 상태가 심각한 김정일의 유고 시 장성택 · 김경희의 '섭정체제'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대장에서 차수로 승진한 리영호 군 총참모장(합참의장에 해당)도 김정은 체제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그는 김정은과 나란히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군 경험이 거의 없는 김정은을 가까이서 보좌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리 총참모장은 또 김정일 김영남 최영림 조명록 등과 함께 정치국 상무위원(5명)에 선출됐다.

한 대북 소식통은 "리영호가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과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을 제치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된 점을 미뤄보면 군부 내 최고 실세로 등장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리영호는 1942년생으로 김 위원장과 동갑이다. 오극렬(31년생)에 비해 10살 이상 젊어 군부 세대 교체의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북 전문가들은 그동안 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렸던 당의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김일성 사망 이후 정치국 상무위원이나 위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국방위원회를 통해 모든 정책이 결정되는 등 군의 영향력이 컸으나 앞으로는 김정일 김정은 리영호가 포진한 당 중앙군사위가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총비서에 다시 추대되고 정치국 상무위원 등 기존 직책을 그대로 유지한 만큼 그가 철권통치를 계속하면서 세습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