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9일 마련한 '대 · 중소기업 동반 성장대책'은 대기업의 납품 단가 인하를 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대기업의 부당한 납품 단가 인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부득이하게 인하해야 할 경우에는 대기업이 이를 직접 증명하도록 명문화했다.

중소기업 협동조합에 단가 조정협의 신청권을 주기로 한 것도 눈에 띈다. 불이익이 두려운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단가조정을 요청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조합이 대신 조정을 신청하도록 구조를 바꿨다는 설명이다. 하도급법 적용대상을 2,3차 업체로 확대한 것도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납품단가 깎을 때는 대기업에서 입증

주요 대기업들은 정부 대책의 방향에 대해 대체로 공감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속내가 편치 않은 분위기다.

특히 하도급대금 감액 입증 책임을 원사업자가 지도록 한 것과 관련해서는 "사실상 납품단가를 현 수준에서 더 이상 깎지 말라는 뜻"이라며 부담스러워했다. 정부가 대 · 중소기업 상생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내린 이유를 조목조목 내놓는 게 가능하겠냐는 의미다.

장기 거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대 · 중소기업 간 하도급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하도급 대금을 조정할 때마다 일일이 사유를 적어 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계약기간을 짧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협력업체 제품의 품질관리에 어려움이 따르고 장기적 협력 관계를 맺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나치게 중소기업에만 유리한 대책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중소기업에만 납품단가 조정신청권을 주고 대기업의 납품단가 감액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며 "대기업에도 동등하게 대금조정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 부여

정부는 원가연동제의 대안으로 조합에 납품단가 조정협의 신청 권한을 위임키로 했다. 일부 중소기업은 조합에 협상권까지 달라고 요청했지만 담합 등 여러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신청권만 주기로 했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대기업들은 조합이 납품단가 조정협의 신청권을 남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영향력 확대를 위해 이 조항을 악용하는 협동조합들이 많아지면 조합이 정치단체처럼 활동하게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신청 권한 부여만으로도 카르텔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동종 업종에서는 원가 변동의 원인이 동일한 만큼 한꺼번에 신청 권한이 동시에 행사될 수 있어서다. 같은 업종 중소기업들이 마음만 먹으면 가격 담합이 가능하다는 게 대기업들의 우려다.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측에서 모두 나오고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조정 신청 권한을 단체에 위임한다 해도 협상 과정에서 신청을 한 기업이 어디인지 노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기존 법만으로도 중소기업들은 납품단가 조정협의 신청이 가능하다"며 "조합이 개입하면 절차만 복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도급법 적용 2,3차 협력사로 확대

원사업자가 하도급업체보다 매출액이나 직원 수가 두 배 이상 많은 경우에만 적용됐던 하도급법 적용대상이 2,3차 업체로 확대된 것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하도급법 적용을 받지 않았던 1,2차 협력업체들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결제대금 60일 이내 지급' 조항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예컨대 매월 100억원어치의 부품을 3개월짜리 어음 형태로 협력업체로부터 구매해온 중소기업은 하도급법 적용 대상이 되면 100억원의 추가 유동성을 마련해야 한다. 결제대금 60일 이내 지급 원칙을 지키려면 기존 3개월짜리 어음을 60일짜리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 밖의 조항들도 현금 유동성에 부담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하도급 법에 따르면 대기업으로부터 선수금을 받았을 경우 이를 15일 이내에 납품 업체에 지급해야 하며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납품단가를 깎지 못한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