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나이 20세쯤 되면 나라를 평온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패기로 큰 전공을 세워 병조판서까지 올랐다가 모함에 걸려 27세로 요절한 남이 장군(1441~1468년)은 조선시대 인물이다. 21세기에 핏줄 이외 아무런 전공도 없이 골목대장도 아닌 정식 대장계급에 막바로 오른 27세 김정은이 나라를 어찌 유지할지 여부가 붉은 장막에 가려져 있다.

기상 이변의 후유증이 추석 제사상을 망치더니 드디어 장바구니에 구멍을 뚫었다. 배추 한 포기에 1만5000원을 호가하니 주부들은 김치 담가 먹기가 무섭단다. 올해는 가정마다 소비를 줄이고 중국 배추,양배추 등 넓게 대체재를 선택하고 견뎌야 할 모양이다. 지난 몇 년간 출하 가격이 안 맞는다고 밭을 통째 갈아엎어 버리던 배추농사가 올해는 적어도 일부 농민에게는 대박을 터트리고 있다. 내년의 작황은 하늘에 달렸다. 7년의 긴 풍년 끝에 흉년이 찾아온 일은 비단 구약성경에 기록된 사건만이 아니라 되풀이되어 왔다. 예견하고 대책을 미리 세워 고통을 더는 일은 사람의 몫이다.

헤지펀드의 풍년시대가 막을 내렸다. 연수익률 30% 실적 올리기를 '정상'으로 여기던 펀드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에서 펀드들은 수수료를 인하하고 스타 매니저들은 업계를 떠나 휴양지나 골프장에서 남은 인생 설계에 돌입하고 있다. 좋았던 시절이 돌아오리라는 기대는 백일몽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펀드는 과거 수익률의 몇 분의 1일 때 만족해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시장 상황이다.

국내 시장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펀드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새로운 이름으로 분장한 랩어카운트에 돈이 몰린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목표 수익률을 한 자리의 낮은 숫자로 하향 조정하고 길게 투자기간을 잡아야 한다.

불이 나면 불을 끄고,홍수가 나면 물을 막는 것이 위기 대응의 정공법이다. 그러나 때로는 큰 산불 막으려 작은 맞불을 놓기도 하고,큰 물난리 피하려 제방을 일부 허물기도 해야 한다. 여기에 전문가의 지식과 판단이 필요하다.

3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에 과잉유동성 공급이 주범이었다. 정책 당국의 과도한 규제 완화,금융회사의 고삐 풀린 차입 및 대출 확대,투자은행의 파생상품 제조와 밀어내기식 판매,가계 부문의 빚 잔치(부동산 구입 등)가 풍부한 유동성 공급 상황의 원인이고 결과였다. 그렇다면 해결의 정공법은 유동성의 흡수이어야 한다.

요즘 미국,영국,다수의 유럽연합(EU) 국가들은 금융의 양적 완화와 재정 지출 확대에 나서고 있다. 깊은 불황의 늪에서 경제를 구제하려는 맞불 놓기 작전이다. 이 작전의 성공 여부에 세계 경제의 맥박이 달려 있다. 이래저래 과잉 공급된 유동성과 재정적자의 뒷마감하는 골칫거리가 궁극적 문제로 남는다. 자칫하면 대내적으로는 인플레이션과 해외부채의 모라토리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행하게도 한국 경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비교적 양호한 위치에 있어 타국보다 일찍 출구전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그러나 OECD 국가 중 국가부채 비율이 낮아 퍼주기 정책 확대 여력이 있음을 타령하던 노무현 정부시대 못지않게 요즘도 여야가 친서민 조치 만들기에 경쟁하고 있어 재정 건전성이 급속히 악화될 우려가 있다.

좌파의 지지로 당선되고도 시장 경제 쪽으로 선회해 착실한 실적으로 80% 이상의 지지도를 누리는 브라질 룰라 대통령이 연임 유혹을 떨치고 명예로운 퇴임을 선택했다. 경제는 좌도 우도 아니고 민간부문의 창의를 살려 시장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 데서 결판난다.

북한에 주체와 선군이 답이 아닌 듯,한국 경제에 포퓰리즘이 정답이 아니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