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매년 영업이익의 10%를 신용도나 소득 수준이 낮은 서민들에게 의무적으로 대출토록 하는 방안이 은행연합회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10% 서민대출 의무화 조치는 당초 한나라당 서민대책특별위원회가 법제화를 추진했지만 은행연합회가 은행 자율로 의무대출 비율을 맞추도록 하겠다며 다음 달 4일 은행장 회의에서 채택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포장만 자율이지 실제론 법에 준하는 강제적인 의무대출규정이 은행권에 새로 도입될 판이다. 서민지원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민간 은행에 의무대출이라는 족쇄를 채우는 것은 곤란하다.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금융의 자율성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친서민을 앞세운 전형적인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라는 비판이 고조되는 이유다.

연합회는 신용등급이 7등급 이하이거나 연소득이 2000만원에 못미치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무담보신용대출인 희망홀씨대출과 유사하게 운용한다는 계획이다. 금리는 연10%대 초반으로 결정하겠다는 방침인데 사회공헌 차원에서 역마진도 감수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민간 은행에 역마진을 감수하라는 것은 금융의 ABC에도 어긋난다. 건실한 경영으로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을 받지 않으면서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 사회와 국가를 위하는 길이다.

기술적으로도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은행의 영업환경 악화로 이익이 쪼그라들면 서민 대출도 줄이거나 환수해야 할지 모르는데 그때는 어떻게 할지 답답한 노릇이다. 대출이 부실화되면 감독 당국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도 문제다.

물론 은행들은 서민들이 일시적 자금난 등으로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금융의 손길을 뻗쳐야 하는데 이를 등한시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로 인해 사(私)금융이 기승을 부리고 급기야 미소금융,햇살론 등 정책성 서민금융상품이 등장한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개발연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의무대출을 강요할 수는 없다. 은행이 시장원리에 따라 서민대출을 늘리도록 유도하면서 정부는 시장의 실패를 보완할 수 있는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