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사내하청 근로자를 '불법파견'으로 간주한 지난 7월 대법원의 판결을 둘러싼 논란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학계는 물론 법조계 내부에서조차 대법원 판결이 산업현장의 실상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현대차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최모씨가 비록 사내하청업체 소속이지만 현대차의 노무지휘를 받았기 때문에 파견근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파견법에 따라 최씨는 근무기간이 2년을 넘긴 시점부터 현대차의 정규직이 된 것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제조업의 상시 근로자 파견은 불법파견으로 간주된다.

최씨는 2005년 불법파업,무단결근 등으로 해고된 뒤 부당해고 구제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곧바로 항소했으나 고법도 2008년 1심과 똑같이 원청회사인 현대차와 최씨의 관계가 '도급'관계일 뿐 원청회사의 직접 노무지휘를 받는 근로자 파견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사내하청이 합법이란 해석이었다.

최씨가 고법 판결에 불복,상고하자 대법원은 1 · 2심 판결과 달리 근로자 파견은 2년 이상 지속되면 사용회사가 고용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파견법 조항을 적용해 원청회사를 사용자로 간주,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대해 조영길 변호사는 "대법원이 품질관리를 위한 원 · 하청 간 자연스러운 협력을 근로자 파견으로 본 것은 문제"라며 "이 같은 판결이 일반화되면 국내의 모든 사내하도급이 불법파견으로 인정돼 기업경영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 변호사는 "컨베이어벨트 생산라인에서는 일의 성격,작업량,작업시간,사용하는 부품종류 등을 원청회사가 통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는 문제될 게 없다"며 "다만 원청회사가 하청근로자에게 '몇 명이서 무슨무슨 일을 하라'는 등의 구체적인 업무지시가 있었다면 당연히 불법파견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장을 잘 모르고 전문성이 부족한 판사들이 법리에만 매달리면서 이런 잘못된 판결이 나온 것 같다"며 "법원도 이런 문제를 판단할 때는 좀 더 전문적이고 치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는 "대법원이 대기업의 현실을 외면한 채 너무 법리적으로만 해석해 기업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며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적어도 이들 나라와 비슷한 고용유연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