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상반기에 구체화할 예정이던 사모펀드 규제 완화를 보류해 사모펀드의 일종인 헤지펀드 조기 도입이 어려워졌다. 지난 5월 관련 연구용역과 공청회가 열려 순항하는 듯했지만 정책순위에서 밀렸다는 지적이다. 최근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금융투자업계도 헤지펀드를 준비해 왔지만 개선안 마련이 늦춰져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선진국 동향 본 뒤 내년 검토"

국내에도 본격적인 헤지펀드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를 모은 금융위원회의 '사모펀드 규제체계 개선 방안'은 내년 이후에나 확정될 전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30일 "선진국에서 진행 중인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 강화 조치들을 지켜본 뒤 그 수준을 참조해 완화 내용을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사모펀드 개선 방안 발표를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등의 규제 내용이 확정되려면 1년 정도는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해 개선안 마련이 상당 기간 늦춰질 것임을 시사했다.

이 같은 금융위 반응은 그동안 사모펀드 규제 개선에 적극적이던 입장에서 180도 선회한 것이다. 금융위는 지난해 12월 '적격투자자 사모펀드'라는 헤지펀드 스타일의 투자상품을 허용하는 등 관련 규제 완화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제도 시행 이후 9개월여 동안 적격투자자 사모펀드는 하나도 출시되지 못했다. 판매 대상이 국가 지자체 금융회사 등으로 한정된 데다 구조조정기업에 자산의 50%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등 규제가 많아 '자유로운 투자'가 속성인 헤지펀드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헤지펀드를 포함한 사모펀드 전반의 제도 개선안을 상반기 중 확정하고 이른 시일 내에 입법절차를 밟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 지배구조,금융소비자 보호 등 현안이 많은 데다 세계적으로 금융 규제를 강화하는 분위기여서 사모펀드 규제 완화는 늦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데다 금융안정위원회(FSB)에서도 헤지펀드 규제가 논의되고 있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업계 "규제 너무 세 역차별"

이 같은 금융위의 연기 방침이 전해지자 업계에선 불만스럽다는 반응이다. 한 증권사 대표는 "외국에선 규제가 거의 없어 금융위기를 부른 데 대한 반성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미 충분한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에 규제 완화를 부담스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역점정책인 녹생성장이나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서라도 사모펀드 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희진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성장잠재력이 크게 낮아진 우리 경제는 사모펀드 활성화를 통한 모험자본의 수혈이 긴요한 시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최근 자문형 랩 열풍에서 보듯 '맞춤투자'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창주 하나UBS자산운용 상무는 "공모펀드의 안정적인 수익을 마다하고 공격적으로 투자하려는 수요가 자문형 랩 등으로 몰리는 현상은 맞춤형 사모펀드에 대한 관심의 다른 표현"이라고 진단했다.

국내의 지나친 사모펀드 규제에 따른 역차별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노 연구위원은 "미국은 자국의 헤지펀드가 해외에서 많은 수익을 올리는 점을 감안해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규제에 소극적인 입장"이라며 "국내 투자은행들도 대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