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색의 삼각형 건축물,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이집트 관광의 키워드다. 가슴을 울리는 스토리텔링보다 여행지를 대표하는 경관 앞에서 인증 샷을 찍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 이집트는 다소 싱거울 수도 있다. 모래벌판에 거대한 피라미드 3개가 덜렁 놓여 있는 곳.그러나 이집트는 눈으로 보는 관광지가 아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기원전으로 돌아가 그들의 숨결을 느끼며 인류문명과 세계사를 리뷰하는 게 어울리는 곳이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나라

이집트 역사는 곧 나일강의 역사다. 6600㎞의 나일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다. 북아프리카 사막지대를 흐르지만 주기적인 범람으로 강안 일대를 풍요로운 농사지대로 바꿔놓았다. 나일강이 범람한 뒤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농사가 시작된다. 11월께 강물이 줄어들면 상류에서 떠내려 온 유기질이 풍부한 충적토가 드러난다. 거름과 물이 없이도 풍년이 드는 땅은 고대 문명국가 이집트를 탄생시킨 초석이 됐다. 강의 범람처럼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자연 현상은 태양력을 만드는 계기가 됐고,이를 기초로 수학과 기하학이 발전돼 피라미드까지 건설하기에 이른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그리고 국립 박물관을 봤다면 카이로를 떠나 룩소르로 향하자.룩소르는 이집트 여행길에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다. 카이로 남쪽으로 660㎞ 떨어진 나일강 동안의 룩소르는 기원전 약 2000년께 건설된 이집트 신왕국의 수도였다.

룩소르는 나일강 기준 서안과 동안으로 나뉜다. 동안은 카르나크신전,룩소르신전,멤논의 거상 등을 포함한 유적으로 화려하다. 서안은 사후세계와 이어져 있다고 해서 죽은자의 거리로 불린다. 왕의 암굴묘가 있는 왕가의 계곡과 왕비의 계곡이 있다. 이곳에 왕묘를 세운 것은 도굴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왕가의 계곡은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다. 카메라 반입 자체가 안 된다.

서안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은 카르나크 신전이다. 규모가 웅장하다. 134개 열주를 보고 있으면 그 장엄함에 육신은 작아지고 마음은 넓어진다. 현존하는 세계 최대 신전이다. 아몬신을 위해 세워졌기 때문에 '아몬 신전'이라고도 부른다. 신전 입구에는 제1,제2탑문이 있다. 제2탑문 앞에 람세스 2세의 거상이 있다.

◆물감을 탄 듯 파란 홍해

룩소르 신전은 카르나크 신전의 부속신전이다. 스핑크스를 사이에 두고 참배의 길로 이어져 있는 카르나크 신전보다 규모가 작다. 신전의 제1탑문 왼쪽에 오벨리스크가 하나 서 있다. 오른쪽에 있던 오벨리스크는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에서 볼 수 있다. 이집트에서 기증했다는 설과 프랑스에서 강탈했다는 설이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신전 기둥과 아직도 선명한 인류 최초의 상형문자를 보면 당시의 건설 인부들이 두드리던 망치소리와 기둥을 세우려 기를 모았던 구령소리들이 환청으로 다가온다.

룩소르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볼거리는 '장제전'이다. 장제전은 유일한 여성 파라오,하트셉수트와 그녀의 시아버지 투트모세 1세의 부활을 기원하며 건립된 사원.바위산을 깎아 만들었는데 건너편에는 왕가의 계곡이 자리해 있다.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돌아본 이집트 고대문명 기행의 종착지로 카이로와 룩소르 사이 동쪽 바닷가 홍해의 후루가다에 들러도 좋다. 이집트가 아닌 지중해의 어느 해변 휴양지인 듯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유럽인들에게는 잘 알려진 휴양명소다. 물감을 탄 듯 파란 홍해 바다가 홍해라니 무언가 말이 안되는 것 같다. 홍해는 히브리어 성경에 '갈대바다(reed sea)'로 돼 있는데 헬라어로 번역되면서 '홍해(red sea)'로 오역됐다는 설이 있다. 해조류 때문에 바닷물이 붉은 빛을 띠기 때문이란 얘기도 전한다. 염도가 높기 때문에 헤엄을 치지 않고 있어도 몸이 둥둥 뜨는 게 신기하다.

룩소르= 김정욱 기자 haby@hankyung.com

■ 여행TIP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 북동부에 있는 나라다. 수도는 카이로.국토면적은 한반도의 4.6배,인구는 7900만명이다.

가을철에 여행하기 좋다. 입국 비자가 필요하다. 현지 공항 세관 앞 은행에서 15달러에 30일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이집트 직항편은 없다. 경유지에 따라 13~15시간 걸린다.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 기차와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다. 국내선 비행기로는 50분 걸린다. 기차는 12시간가량 걸린다. 자동차 이동은 하지 않는 게 낫다. 통화단위는 이집트 파운드.요즘 환율은 1이집트 파운드에 200원 선이다. 미 달러화도 받는다.

사람들은 순박하고 친절하지만 관광지에 가면 바가지를 쓸 수도 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면 휴지 뜯어주고 팁을 요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