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강영원 석유공사 사장 "다나측, 中 백기사 접촉설로 긴장…최대주주 슈로더 설득이 주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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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석유개발업체 '다나' 인수 강영원 석유공사 사장
다나 페트롤리엄의 매력은
지역별 포트폴리오 거의 완벽, 아프리카 영토확장에 최적, 해외 전문인력 확보도 큰 이득
자원전쟁 현황과 전략은
中, 어마어마한 돈 쏟아 부어…인지도 높이고 덩치 커야 생존
향후 M&A 계획은
하루 30만배럴 달성 때까지 해외 유망 업체 더 인수할 것
다나 페트롤리엄의 매력은
지역별 포트폴리오 거의 완벽, 아프리카 영토확장에 최적, 해외 전문인력 확보도 큰 이득
자원전쟁 현황과 전략은
中, 어마어마한 돈 쏟아 부어…인지도 높이고 덩치 커야 생존
향후 M&A 계획은
하루 30만배럴 달성 때까지 해외 유망 업체 더 인수할 것
"아직 갈 길이 아주 멉니다. 국내에서 하루에 쓰는 원유 250만배럴 중 겨우 10%가량을 우리 손으로 확보했을 뿐입니다. "
강영원 한국석유공사 사장(59)은 지난 1일 영국 석유탐사기업인 다나 페트롤리엄 지분 75%를 인수,적대적 인수 · 합병(M&A)에 성공한 뒤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은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서 유전 · 가스 광구를 무차별적으로 집어삼키며 블랙홀처럼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다"며 "정부와 민간기업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자원 대전에 경각심을 갖고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사장은 2008년 8월 취임 이후 자본금 확대와 해외업체 인수 등을 통한 석유공사 대형화에 힘쓰고 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다녀 온 해외 출장은 12번.석 달 가까운 80여일을 해외에서 보냈다. 추석 연휴에는 아프리카의 신생 자원부국인 적도기니와 콩고를 방문,자원협력 기회를 모색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 70위권 자원기업 규모로는 여전히 해외 M&A 시장에서 명함을 내밀기 힘들다"며 "해외 기업 M&A를 통한 대형화 전략으로 우선 회사 몸집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다나 인수를 확정지은 소감이 궁금합니다.
"전 아직도 배가 고픕니다. (웃음) 솔직한 심정입니다. 다나 인수는 석유공사 대형화를 위한 첫걸음일 뿐입니다. 1979년 공사 설립 이후 최대 규모의 M&A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있지만 제2,제3의 다나 인수가 시급한 만큼 이번 성공에 도취해서는 안 되겠죠.지난 2년간 캐나다 하베스트에너지 등 굵직굵직한 해외 M&A를 진행하며 세계 시장에서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축적된 노하우와 경험을 통한 치밀한 M&A 전략이 성공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
▼75%의 지분을 확보했는데 남은 절차가 있나요.
"영국 재정청(FSA)에 다나의 상장폐지 신청을 해놓았습니다. 오는 28일 상장폐지가 이뤄지면 각종 공시나 보고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어 석유공사의 경영권 행사 범위가 확대됩니다. 상장폐지되면 주식 유동성 및 시장성이 크게 떨어져 매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주주들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도 쉬워집니다. 신규 경영진 선임도 상장폐지 시기에 즈음해 진행할 예정입니다. 지분 100% 확보에 드는 비용은 18억7000만파운드(약 3조4000억원 · 주당 18파운드 기준) 정도입니다. 내부 유보금이 10억달러에 달하는 데다 수출입은행(7억달러),정책금융공사(5억달러) 등 국내외 금융권에서 확보한 차입금도 충분해 인수자금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
▼처음부터 적대적 M&A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까.
"지난 6월 톰 크로스 다나 페트롤리엄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우호적인 인수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 후로도 가격 등 인수조건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하는 등 우호적 자세를 고수했습니다. 하지만 그쪽에서 우리가 제시한 주당 매입가(17~18파운드)보다 3~4파운드 높은 가격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2개월의 협상이 결국 가격문제로 결렬되면서 불가피하게 8월20일 주주들에게 공개매수 제안을 하게 된 겁니다. "
▼적대적 M&A에 나설 만큼 다나가 매력적인 회사입니까.
"지역별 포트폴리오 구성이 거의 완벽합니다. 작년 캐나다 하베스트 인수로 북미 자원개발 거점을 마련한 석유공사로선 북해 및 아프리카 자산을 보유한 다나가 가장 이상적인 인수 후보였습니다. 유럽 금융위기로 인해 그쪽 석유회사를 인수할 수 있는 기회도 좋았고요. 다나는 총 생산량의 약 80%를 북해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내에서 안정적인 생산자산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원 영토를 아프리카까지 넓힐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지요. 이번 인수를 통해 석유공사 직원으로 함께 일하게 될 해외 전문인력 200여명을 확보하게 된 것도 큰 이득입니다. "
▼가장 큰 고비는 언제였습니까.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습니다. 다나 경영진이 석유공사의 적대적 M&A를 무산시켜 줄 중국 측 백기사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인수 경쟁사 등장에 대한 우려와 그에 대한 대비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아시아계 국영회사가 영국에서 적대적 M&A를 추진한 전례가 없다는 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걸림돌이었습니다. 다나 최대주주(13.4%)였던 슈로더 인베스트먼트를 설득한 것은 인수전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슈로더가 우리가 제시한 공개매수에 응하겠다는 의향서(LOI)에 사인을 했지만,의향서는 말 그대로 '의향이 있다'는 뜻일 뿐 법적구속력이 없습니다. 최대주주인 슈로더를 설득해야만 다른 기관투자가들이 따라올 것으로 보고 슈로더 설득에 공을 들였지요. 슈로더에 지분 선매입을 제안했고,현금을 앞당겨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 그쪽에서 이를 수용하면서 인수전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
▼현장에서 느끼는 세계 각국의 자원전쟁 강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앞서 진출한 미국 외에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신흥 석유소비국인 중국과 인도가 가세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유망 광구에 육상 송유관을 연결해놓고 있습니다. 우리로선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투자비를 자원 확보에 쏟아붓고 있지요. 아프리카를 가더라도 수익성이 있는 웬만한 유전광구에는 이미 중국이 손길을 뻗치고 있습니다. 신 · 재생에너지 개발이 활발하지만 화석연료 의존도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겁니다. 세계 각국이 자원을 무기화하는 상황인 만큼 원유 · 가스를 단순 수입에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해외에 적극적으로 나가 우리 손으로 원유를 뽑아낼 수 있는 광구를 확보해야 합니다. "
▼석유공사 대형화를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요.
"작년 캐나다 하베스트에너지를 인수할 때 석유공사 M&A 실무팀이 얼마나 괄시를 당했는지….'인수할 돈은 있나' '인수하더라도 운영할 능력은 되냐'며 아예 무시했습니다. 세계 자원시장에서 아직 석유공사의 인지도는 낮습니다. 인지도를 높이고 해외 M&A 시장에서 유리한 협상 고지에 오르기 위해선 무엇보다 대형화가 필요합니다. 하베스트와 이번 다나 인수로 공사 대형화를 위한 기반은 닦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 지원도 필요하지만 공사 자체적으로도 지속적인 투자 확대를 위해 재무적 투자자 유치 등 다양한 자금조달 방안을 강구해나갈 생각입니다. "
▼국내 민간기업들과의 협력도 중요한 것 아닐까요.
"물론입니다. 해외광구 확보 및 운영 과정에서 민간기업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2008년 인수한 미국 앵커(ANKOR) 광구는 민간 상사의 정보력과 석유공사의 기술력을 결합해 성공한 사례입니다. 최근에는 자원개발과 관련 산업 분야 간 제휴를 통한 패키지형 동반 진출을 모색하며 민간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
▼추가 M&A 계획이 있는지요.
"적대적 M&A는 너무 힘들어서 앞으론 최대한 자제할 생각입니다. (웃음) 석유공사는 2012년까지 하루 생산량 30만배럴,총 매장량 20억배럴 유전 확보 목표를 달성하고 잠재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해외 석유개발업체 인수에 적극 나설 겁니다. 2007년 7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해외 M&A팀을 통해 유망 해외 인수 후보를 물색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아프리카 방문 때 적도기니 정부와 전략적 협력관계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를 맺었고 앞으로도 아프리카 진출을 확대해나갈 방침입니다. "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
◆ 강영원 사장은
강영원 사장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1975년 첫 직장인 ㈜대우에 입사했고 2000년 말 대우인터내셔널이 회사분할로 독립하자 자리를 옮겨 상품영업부문장과 대표이사를 지냈다. 방글라데시와 아르헨티나 등에서 해외 영업과 자원개발 사업을 맡으며 경험을 쌓았다. 33년간 '대우맨'으로 살아 온 그의 직함은 늘 '강 대리'였다. 주말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업무에만 매진하는 그에게 직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2008년 8월 석유공사 사장에 취임한 이후에도 매주 금요일이면 여행가방에 검토 중인 서류 뭉치를 챙겨 집으로 가져가는 일이 다반사다. 원칙주의자라는 평을 듣는 그는 조직 및 개인 성과를 연계한 성과보상 제도와 민간기업형 퇴출제도를 도입했다. 재무처장에 40대 인사를 기용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공기업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부 경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80타대 초반의 골프 실력을 갖고 있지만 석유공사 사장을 맡은 뒤에는 거의 손을 놓았다. 주말에 직원들과 등산을 하는 등 스킨십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1주일에 두 번씩 사내 아랍어 강좌를 듣는 등 학구열도 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