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화재가 발생한 지 30여분 만에 4~38층이 불에 탄 부산 우동 우신골든스위트 주상복합건물은 소방시설 점검에서 29건의 불량이 적발돼 시정명령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 건물을 포함해 2009~2010년 실시된 부산 고층복합건축물 28개에 대한 점검에서도 13개 건물이 불량판정을 받아 화재 대책이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3일 행정안전부와 경찰 등에 따르면 우신골든스위트는 소화설비,경보설비,피난설비,소화활동 설비 등 29건에서 기준에 미달했으나 제대로 고쳐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4일부터 시작되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고층건물의 재난관리 시스템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수사상황

화재발생 경위를 수사 중인 경찰은 이날 우신골든스위트 4층 재활용품 집하장 내 미화원 탈의실에서 불이 처음 발생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미화원 탈의실에서 '퍽'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과 연기가 났다"는 환경미화원의 진술을 확보했다. 또 탐문수사를 통해 탈의실에 각종 전기배선이 꽂혀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노상환 해운대경찰서 형사과장은 "전기적 요인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전문가가 참여하는 정밀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검찰,소방본부,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20여명은 이날 최초 발화지점에서 합동으로 현장감식을 했으며 선풍기 2대와 진공청소기 2대,바닥청소기 등 19점을 수거해 정밀감식을 벌이고 있다.

◆30층 이상 주상복합,서울 120개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지상 11층 이상 고층 건물은 전국적으로 8만3725동에 이른다. 유형별로는 아파트가 7만8490동(1만4293개 단지)에 달하며 오피스빌딩 등 복합건물도 5235동이 있다. 2000년대 들어 서울지역에 들어선 30층 이상 고층 주상복합 건물만 120개나 된다. 불이 난 골든스위트 인근에도 30층 이상 주상복합 아파트와 주거용 오피스텔이 즐비하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는 주거용 건물로는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최고 80층짜리이며,바로 옆 해운대 아이파크 역시 지상 72층이다.

고층 복합건물이 급증하자 정부는 화재 등에 대비한 안전대책을 강화해 왔다. 하지만 스프링클러 의무화,소방도로 접근로 확보,피난용 승강기 설치 의무화가 고작이었다. 최근에는 '초고층 건물과 지하연계 복합건물에 대한 재난관리 특별법'을 제정,국회의결을 앞두고 있다. 특별법은 지상 50층 이상이거나 높이 200m 이상인 건축물에 피난안전구역 설치하고 재난관리 책임자를 두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50층 미만 고층건물이 적용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고가 사다리차가 닿지 않는 지상 20~49층은 여전히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대피공간이 없다

일반 아파트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05년 말부터 거실 문을 터 주거용도로 쓸 수 있도록 발코니 트기가 허용돼 집은 넓게 쓸 수 있지만 화재 등 안전사고에 무방비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현행 기준에 따르면 신축 아파트는 인접 세대 경계부분 발코니에 내화구조의 대피공간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수 없을 땐 화염차단을 위해 방화판이나 방화유리를 시공해야 한다.

외국에선 초고층건물 화재가 대형참사로 이어지는 점을 인식해 엄격한 방재설계 규정을 두고 있다. 미국에선 바닥이나 트러스 기둥 계단 배관 등이 모두 내화력을 갖도록 규제했다. 일본은 방화벽,비상용계단 설치를 의무화했다. 화재 대피훈련도 자주 한다. 초고층이 많은 두바이는 21층 이상 건물은 의무적으로 소방서의 원격모니터링 시스템과 연결돼 있다. 또 소방관 전용 승강기 3대가 설치돼 최악의 상황에서도 소방대 진입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강황식/부산=김태현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