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현인들은 중용(中庸)의 길을 가라 하지만, 사람에게는 욕망이라는 것이 있어 그 도리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욕망은 지나치면 집착으로 발전한다. 사람이 가지게 되는 이 집착은 남을 지극히 사랑하는 애착(愛着)과 물질의 욕망에 휩싸인 탐착(貪着)과 누군가를 지독히 미워하는 원착(怨着)이 있다. 모두 중용의 도를 넘어서 생기는 것들이다. 이런 집착은 버려야 할 것들이지만 한번 집착에 빠지면 벗어나기가 어렵다.

“돈에 집착하는 홍콩 젊은이들은 점차 상상력과 창의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라고 중국의 시인 베이다오(北島))가 국내의 한 대학 강연에서 집착에 대해 우려의 말을 했다. 그리고 돈에 대한 집착으로 요즘 젊은이들이 호기심도 없고 독립심, 자기 표현력도 없다고 했다. 이 시인의 말은 단지 홍콩 젊은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성적이지 못한 욕망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부작용인 것이다.

사람이든, 재물이든 마음을 다하면 의욕이 생기고 발전적인 상황이 되는 것이 맞지만, 너무 집착하면 그것의 노예가 되듯이 집착에 빠지면 긍정적인 관계가 아니라 부정적인 관계로 변한다. 집착은 편향된 사고를 갖게 하고 닫힌 마음으로 고통 속에 살게 된다.

얼마 전 한 재력가 집안의 자손이 필자를 찾았다. 그의 가문은 일제 때부터 소문난 거부로 엄청난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현 상속자인 그는 10년 동안 가족 간의 재산 싸움을 하느라 많은 재산을 날린 상태였다. 게다가 상속 과정에서 법적인 문제를 처리해주던 대리인이 집안의 숨겨진 부동산을 몰래 빼돌렸다.

대리인에 대해 심증은 있지만 아무런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고 공소시효 10년이 코앞에 다가오자 급한 마음에 도움을 청하러 나를 찾은 것이었다. 재산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부를 자랑하던 가문은 이제 모두 옛이야기가 될 판이었다. 탐착에 피폐해진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탐착으로 인한 문제는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다. 집착은 지나친 소유욕에서 생기는 것이다. 많이 가지려는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것이 탐착으로 번지면 자신에게 그치지 않고 가까운 사람과의 원착까지 생기게 된다. 불가(佛家)에서는 어떠한 상(相)도 붙들지 말라 했다. 상(相)을 붙드는 순간 흔적이 남고, 그 흔적이 바로 집착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모습으로 떠나는지 알아야 한다. 특히 부자가 수의(壽衣)에 주머니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부를 자식들에게 적당히 분배하고, 나머지는 세상에 베풂으로서 나눔이 주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들은 남겨진 유산 때문에 싸우고, 죽은 사람은 놓고 온 재산이 아까워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한 사랑도, 영원한 재물도, 영원한 미움도 없는 것이다. 모두 변하고 인연이 아니면 사라지고, 인연이 다하면 떠나 버린다.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인해 집착을 하기 때문에, 그 집착에서 벗어나려면 비우고 버려야만 한다. 버려 버리면 그렇게 붙들고 있던 집착이, 한 낫 물거품인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품속에 모으지 말고 비움으로서 진정 가치 있는 행복을 느끼기 바란다. (hooam.com/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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