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건물 앞 도로에서 벌어진 일이다. 버지니아주에서 승용차로 워싱턴 시내에 진입해 첫 사거리 신호를 막 통과한 참이었다. 앞쪽 신호를 받아 정차한 차들 뒤로 멈춰서는 순간 '꽝' 소리와 함께 후방추돌이 발생했다. 덩치가 산만한 백인이 승용차에서 내리더니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좀 여유있게 다음 신호를 기다려야 했는데 급한 마음이 앞섰다"고 사과했다.

미국인들의 조급증은 도로 위에만 국한된 것 같지는 않다. 지난달 20일 국민들과의 대화시간에 한 흑인 여성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당신과 당신의 정부를 감싸는 일에 넌더리가 난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 너무 실망하고 있다"고 불만을 퍼부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이가 없었는지 자신도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공화당 정권이 실정을 해서 10년에 걸쳐 망쳐놓은 경제를 취임 21개월 동안 제대로 살려놓지 못했다고 한다"며 맞받았다. 취임한 뒤 경기부양법,의료보험개혁법,월가개혁법을 마련해 공약을 지킨 그에게 46%라는 지지율은 억울할지 모른다.

CNN방송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쌍방향 조급증'이란 진단을 내렸다. 오바마 대통령이 강박감에 정치적으로 의료보험,금융개혁을 잇달아 밀어붙여 어려움을 자초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빠르게 해치우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이 더 빨리 결과를 원하는 전자레인지 같은 사회(microwave society)"라고 양쪽을 싸잡아 비판했다.

칼자루를 쥔 쪽은 유권자들이다. 지난 8월 현재 미국의 평균 실업률은 9.6%다. 흑인들과 히스패닉계 실업률은 각각 16.3%와 12.0%에 달했지만 백인들은 8.7%를 기록했다. 11월2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야당인 공화당으로 선거자금이 몰리고 판세가 기우는 것은 흑인들과 히스패닉계가 등을 돌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은 대선 때 오바마의 열렬한 지지자들이었다. 불법 이민자 수가 많은 히스패닉계는 이민법 개혁이 후순위로 밀려 더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국가경제를 망쳤다고 비판받는 공화당은 요즘 기세가 등등하다. 공화당의 하원 지도부는 '미국에 대한 서약(Pledge to America)'을 중간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원 다수당 자리를 탈환하면 오바마 정부가 달성한 의료보험개혁법,월가개혁법을 손보거나 폐기하겠다고 큰 소리다. 개혁법의 실효성을 확인하지 않고 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도 안중에 두지 않는 조급증이다.

미국과 중국 간 위안화 환율전쟁 문제도 그렇다. 중국 입장을 두둔할 의도는 전혀 없지만 상황을 차분히 살펴보자.미국은 위안화 절상속도를 높이고 절상폭을 확대해야 대중국 무역적자가 해소된다며 중국 정부를 압박 중이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되돌아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아 보인다.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는 2005년 7월~2008년 7월 사이에 21% 절상됐지만 2005년 2022억달러였던 대중국 적자는 2008년 2680억달러로 늘어났다.

그렇다면 미국은 자국산 제품의 단기적인 가격경쟁력보다 산업경쟁력을 키우는 속도에서 정작 조급증을 내는 게 낫지 않은지 모르겠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중국의 발빠른 차세대 에너지산업 현장을 둘러본 뒤 혀를 찬 적이 있다. 그는 에너지산업 개혁법안이 의회 정쟁에 발목잡힌 미국의 현실을 '만만디(慢慢的)'라고 개탄했다.

워싱턴=김홍렬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