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각종 기존 동화의 뻔한 해피엔딩에 딴죽을 건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우던 왕자는 덩달아 잠들고,콩나무를 타고 올라가던 잭은 거인에게 밟혀 버린다. 탑 아래로 머리카락을 내려뜨려 왕자를 끌어올리던 라푼젤은 왕자의 몸무게를 못이겨 그만 굴러 떨어진다.
엘라의 옷과 마차는 자정도 되기 전에 사라지고,왕자는 멍청하기 그지없다. 프리다가 동화 주인공의 운명을 결정짓는 저울을 빼앗아 마구 휘저은 결과다. 엘라는 '어째서 내 인생의 목표가 왕자와의 결혼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고 결국 왕자가 아닌 씩씩한 하인 릭을 선택한다.
'미국식 패권주의 전파의 첨병'이란 비판에도 불구,할리우드 영화가 세계의 관객을 끌어모으는 바탕엔 바로 이런 상상력이 있다. 익숙한 콘텐츠를 차용하되 내용과 전개를 확 바꿈으로써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끌어내는 셈이다.
올해의 '이그(Ig) 노벨상' 수상자로 '욕설 요법'을 내놓은 영국의 리처드 스테픈스와 빙판에서 미끄러질 위험을 줄이자면 구두 위에 양말을 신으면 된다고 발표한 뉴질랜드 의사 등이 뽑혔다는 소식이다.
이그노벨상은 미국 하버드대 과학잡지(AIR)에서 과학에 대한 관심 제고를 위해 1991년 제정한 상.현실적 쓸모에 상관없이 발상 전환을 돕는 이색적인 연구,고정관념이나 일상적 사고론 생각하기 힘든 획기적인 사건에 주는 것이다.
'이그'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진짜(Improbable Genuine)'의 약자,'이그노벨'은 '고상한(noble)'의 반대말(ignoble · 품위 없는)과 통한다. 부문은 평화 · 생물학 · 의학 · 수학 · 경제 등 10개.상금은 없고 시상식 참가비도 각자 내야 하며 수상소감 발표도 60초로 제한된다.
일단 웃겨야 하고 웃음을 바탕으로 호기심 및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선정기준은 동화 뒤집기를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건 물론 상상력의 범주를 넓히는 할리우드식 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부문은 다르지만 양쪽 모두 미국의 힘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부럽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