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연합회가 은행들의 권익 보호나 금융산업 발전이라는 본래 설립 취지보다는 정부나 정치권의 요구를 은행에 반영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6일 금융계에 따르면 신동규 은행연합회장은 최근 서민대출 상품인 '새희망홀씨' 출시에 앞서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과 은행 영업이익의 10%를 서민대출에 쓰겠다고 합의했다. 홍 의원이 은행 영업이익의 10%를 의무적으로 서민대출에 쓰도록 법제화에 나서겠다고 밝히자 법제화를 막고 자율적,한시적으로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은행연합회의 설명이다.

그러나 은행들의 생각은 다르다. A은행장은 지난달 29일 신 회장이 홍 의원과 합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합의했다고 될 일이 아니다"며 "시장경제 논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논리를 개발해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B은행장도 "금시초문"이라며 "은행과 협의 없이 그럴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은행 영업이익의 10%를 서민대출에 할당하는 방안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논란을 빚었던 정책이다. 다른 은행 고위 임원은 "사실상 상부기관으로 군림하고 있는 은행연합회가 은행의 주된 영업행위인 대출에 대해 규제를 가하는 것인 만큼 헌법에 위배될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연합회는 지난 4일 은행장들이 참석한 이사회에서 은행 영업이익의 10%를 자율적으로 서민대출에 쓰기로 합의했다.

은행연합회는 지난달 29일에는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취업포털 워크넷을 통해 근로자를 채용한 기업이 은행과 거래할 때 대출금리와 수수료,보증료율 등에서 우대해 주기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지난 6월30일 은행연합회 이사회는 은행의 녹색금융 투자지원 등에 대한 업무 기준과 절차가 담긴 '은행 녹색금융 운용 모범 규준' 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은행들은 녹색금융 업무를 총괄하는 의사결정기구를 설치해야 하며 지원 대상과 심사기준,여신우대기준,사후관리 방안 등의 녹색금융 관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은행들은 은행연합회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은행연합회가 최근 들어 유독 정부와 정치권에 끌려 다니는 것 같다"며 "그러다 보니 은행들의 입장은 뒷전으로 밀리곤 한다"고 지적했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