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A건설회사는 한 대기업으로부터 10억원짜리 하도급 공사를 따내 6개월째 공사를 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공사 진행에 어려움을 겪던 A사는 최근 대기업이 발주자인 부산항만공사와 공사금액 증액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A사는 '왕갑'인 대기업에 하도급 계약금액을 올려달라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하고 있다. 건설산업기본법상 발주자는 1차 건설사와 계약금액이 바뀔 때마다 이들의 하도급업체에도 변경 사실을 알려야 하지만 법조항이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김기현 한나라당 의원(울산 남구)은 7일 "부산항만공사,컨테이너부두공단,부산 · 마산 항만청 등 9개 항만 관련 공공기관을 2009년 2월부터 지난 6월까지 조사한 결과 이들 정부기관이 하도급업체에 설계변경으로 계약금액이 바뀐 24건 중 이 사실을 알린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통상 정부계약 공사의 경우 발주자인 공공기관이 대기업 건설회사에 1차 발주를 하고 대기업은 다시 중소 협력업체에 2차 발주(하도급)를 한다. 9개 공공기관은 태풍,해일 등 자연재해 발생 시 피해 규모가 가장 큰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또 이들 공공기관은 대기업 발주자가 하도급업체에 대금지급 기일을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관리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부산항만공사의 하도급업체 38개 중 21개업체는 중간에 낀 대기업으로부터 지급 기일에서 보름이 지나도록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지방해양항만청의 60개 하도급업체 중 16개 업체가 한 달 가까이 계약금액을 받지 못했다. 김 의원은 "건설산업기본법상 발주자인 정부기관은 하도급업체들이 대기업으로부터 공사대금을 15일 내에 받고 있는지를 추후에 확인하도록 돼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계약금의 30~40% 수준의 돈을 주면서 하도급업체에 공사를 맡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김 의원은 "하도급 금액이 낮을수록 부실 시공과 임금 착취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하도급 계약금액이 82% 미만인 경우 발주자인 공공기관이 계약 내용의 적정성을 심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