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직후 성행했던 '기업 쪼개기' 바람이 다시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땐 구조조정과 몸집 줄이기 차원에서 대기업들이 분할 움직임을 주도했지만 최근엔 중견 · 중소기업이 전면에 나선 점이 차이다. 선제적 분할을 단행한 대기업들이 몇 년 전부터 두드러진 수익성 개선과 주가 재평가로 효과를 입증하자 중견 · 중소기업이 뒤따르는 모양새다. 지배구조개선이나 구조조정 목적으로 주로 활용됐던 기업분할이 점차 성장 전략으로 인식되는 점도 분할 급증의 배경으로 꼽힌다.

하지만 기업분할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질적인 사업 영역을 쪼개 효율성을 꾀하는 대기업과 달리 일부 중견기업은 사업 전문화 대신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나 막연한 주가 상승을 노리고 분할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분할 과정에서 신설회사와 존속회사 간의 자산과 부채를 어떻게 배분해 효율을 제고하는지를 특히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견기업 위주의 분할 바람 거세

기업분할이 활성화된 시점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다. 국내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를 갖춘 LG그룹이 2001년 LG화학,2002년 LG전자를 잇따라 분할시켰고 2003년 전선 금속 부문인 LS그룹,2004년 금융 계열이었던 LG카드와 LG투자증권,2005년엔 정유 홈쇼핑 건설 부문을 GS그룹으로 분할시켰다. LG그룹에 이어 SK STX 두산 CJ그룹 등이 잇따라 분할을 통해 지배구조개선을 꾀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유가증권 상장사의 분할 건수는 2000년 2건(분할기일 기준)에 불과했지만 2001~2004년 평균 6건,2005~2007년 평균 15건으로 늘어나다 2008년 30건으로 급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작년엔 16건으로 줄었지만 올해는 지금까지 16건(5건 진행 중)에 달해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엔 중견 · 중소 상장사들이 분할에 적극 나서는 것이 특징이다. CJ오쇼핑 동부정밀 한미약품 대성지주 LS산전 한국화장품 등 중견기업과 함께 조선선재 SJM 일경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코스닥기업인 에듀언스 보광사이버다임 오픈베이스 한국캐피탈 등도 지난달 분할을 결의했다.

최창규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태평양에서 분할된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상사에서 나온 LG패션처럼 분할 후 생산성과 수익성이 크게 좋아진 사례가 본보기가 되고 있다"며 "분할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올라 외국인들도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예전엔 지배구조개선 차원의 분할이 많았지만 요즘은 효율적인 자산 배분을 성장 전략으로 삼는 기업이 많다"고 진단했다. 화학 부문을 떼낸 SK에너지와 미디어사업을 분할한 CJ오쇼핑처럼 대기업의 분할도 사업 전문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사업전문화 전략 없으면 독이 될 수도

분할이 발표되면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고 있는 점도 주목 대상이다. 사업전문화로 실적이 개선될 것이란 기대 덕분이다. 최 연구원은 "CJ오쇼핑 주가는 6월10일 분할 공시 이후 기대감이 선반영되며 거래정지 때까지 34% 급등했다"며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면 지주회사보다 영업자회사의 주가가 더 탄력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부 중소기업 중심으로 사업전문화에 대한 신중한 고려 없이 분할에 나서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딱히 구별되는 사업군이 없고 지주회사 체제 구축의 필요성이 적은 데도 막연한 주가 상승을 노리는 경우다. 최 연구원은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대주주가 사업회사 지분을 팔고 지주회사 지분을 사는 방식으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분할을 악용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분할 과정에서 자산과 부채를 어떻게 배분하고 활용하는지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 CJ오쇼핑은 분할 후 부채 비율이 164%로 이전(106%)보다 높아졌지만 오미디어홀딩스의 부채 비율은 58%로 크게 낮아졌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오미디어홀딩스가 CJ미디어를 합병하는 등 그룹계열사 전반을 재편할 목적으로 오미디어홀딩스의 재무건전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자산과 부채 배분에 따라 향후 투자 여력이 결정되는 만큼 분할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면 특정 사업 부문의 역량 강화나 신사업 진출 의지 등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진형/노경목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