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올해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발표 전까지만 해도 AP통신 등 외신들은 우리나라 시인 고은을 주요 후보자로 거론했고 여타 언론사에서도 지난해보다 수상 가능성을 훨씬 높게 보는 듯한 소식을 전했다. 그러기에 우리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올해만은 결실이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최근 6년 동안의 수상자 중엔 시인이 없었고 고은 시인이 올해 전 30권이나 되는 《만인보》를 완간하기도 해서 수상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차제에 고은 시인뿐 아니라 더 많은 시인이나 소설가 혹은 극작가들이 후보에 올라 한국 문학의 내일을 찬연하게 열어가기 위해 우리 문학의 오늘을 냉정히 진단하고 개선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몇 가지 생각해 볼 거리들이 있다. 제일 먼저 번역 문제다. 지금 한국문학번역원이나 대산문화재단 등에서 지속적으로 관련 사업을 추진하거나 지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한국의 국력에 비해 작품 소개가 너무 빈약하다. 외국 문학을 전공한 학자나 외국 대학을 다녀본 이 분야 관심 연구자들은 해외에서 우리 문학의 인지도가 지나치게 낮다고 강조한다. 외국 학자들이 자발적 연구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우리 전문가들이 좀더 많은 번역을 하게 해야 한다.

우선 작품을 제대로 외국 독자에게 더 많이 읽히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번역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번역이 원작을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재창작이라고 할 만큼 번역은 단순히 언어 유창성만이 아니라 두 나라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전제한 것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좀 더 일찍부터 활성화되도록 이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면 일찍이 수상의 영광을 누렸을지도 모른다.

문단 내부 풍토 중에서 몇 가지를 든다면 우선 비평의 활성화를 거론하고 싶다. 물론 한국 문학 내부에서 비평이 위축돼 있지 않다.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면서 작가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반성의 계기를 갖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인들은 준엄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작가를 격려하기도 하고 또는 자극을 주어 새로운 문학세계로 선도할 만한 역량을 보여주는 큰 비평가를 거의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저마다의 성지 안에서 보호해주고 상찬해주는 비평행위가 많아지고 있고 그런 비평에 특별히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결국 그런 행위가 저급해지면 종래에는 패거리문학이 될 수도 있다. 대체로 그런 성지에는 문화권력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 문화권력은 문학상과 잡지 지면이라는 중요한 무대에 의해 그 권위가 유지된다. 그러다 보면 그 성지 소속이 아닌 문인들은 그곳이 닫혀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문인들 간엔 자주 나누는 이야기지만 실험정신이 고양돼야 한다. 처음엔 다소 어설프지만 새로운 형식,새로운 내용,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려는 창작자들을 우호적으로 바라보고 그 노력을 평가해 주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실험문학상 같은 것이 제정돼 한국 문학의 스펙트럼을 확대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민족만이 지닌 작품을 발굴해서 소개하는 작업을 추진했으면 한다. 내용이나 형식 어느 쪽이건 다른 민족과는 다른 한국적 개성을 보여줌으로써 한국 문학의 독자적 컬러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형식의 경우 시조문학을 조명해 보는 것도 그 예가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노벨 문학상과 한국 문학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머지않아 수상의 기쁨을 맞으리라 생각한다. 그 준비는 우리들의 몫이다.

이우걸 < 시조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