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인터뷰] "음악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그래서 전 행복합니다"
왼쪽 목에 난 상처부터 눈에 들어왔다. 동전 크기만한 흉터,바이올린에 짓눌려 검게 타버린 '영광의 상처'였다. '바이올린의 시인'으로 불리는 강동석 연세대 음대 교수(56).자그마한 체구에 조용조용한 말씨.꼭 세상 물정 모르는 예술청년 같다. 들고 있는 바이올린은 1730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였다. 300년 가까운 세월의 강을 넘어 천상의 소리로 세상을 어루만지는 악기.그냥 만져보기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최고의 명기다.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으면 목이 저토록 짓물렀을까. "이거요? 연습 많이 해도 표시 안 나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조금만 해도 티가 많이 나는 편이죠.피부가 다 다르니까….신기한 게 연습 안 하면 금방 사라져요. 거 참,연습에 게으른 사람이 이렇게 표만 내고 다니다니 원…."

세계 3대 바이올린 콩쿠르를 석권하고 영국과 벨기에 왕실 초청연주,유명 오케스트라 협주 등 화려한 경력의 거장이 하는 말치고는 맥없다. 그는 어릴 때도 연습 시간에 놀러갈 궁리만 하는 '악동'이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다른 애들하고 똑같았죠.부모님이 시키니까 하긴 하는데 한눈팔기 일쑤였어요. 피아노를 하다 바이올린으로 바꿨죠.다섯 살 때 활을 잡았어요. 음악이 좋긴 했지만 틈만 나면 친구들과 놀고 싶어했습니다. "

그가 당시 인기 있던 김일 선수의 레슬링 경기를 보기 위해 연습 시간을 후다닥 앞당기고는 TV 앞에 앉았다니 더욱 뜻밖이다. 그는 대신 "음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열세 살에 미국으로 건너간 첫해에는 죽어라 연습에 몰입했다. 말이 잘 안 통하니까 더욱 그랬다. "이듬해에는 영어 공부에 올인했죠.첫해에는 영어 못해도 봐줬는데 다음 해엔 안 봐주더라고요. 공부하느라 연습을 많이 못하니까 선생님이 매일 연습 시간 체크하면서 독려했죠."

그는 지금도 "연습량만 갖고 실력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고 연습의 질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람마다 신체 특징이 다르잖아요. 어떤 사람은 연습이 많이 필요하고….재주가 더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시야를 넓게 가져야 해요. "

그가 세상과 만나고 시야를 넓히는 방법은 따로 있다. 프랑스 파리에 부인과 딸을 두고 있으며 근거지도 거기지만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국외에서 보낸다. 봄에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을에는 자선연주회로 고국에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여름에는 프랑스 쿠셰빌에서 뮤직알프 여름음악캠프 예술감독으로 학생들을 지도한다. 시간을 몰아 연세대 음대에서 강의하는 것까지 합치면 몸이 서너 개라도 못 따라갈 것 같다.

그런 그가 '희망콘서트' 얘기만 나오면 모든 걸 놔두고 일어선다. 이번에도 그렇다. 그는 10일부터 14일까지 서울과 지방 등 5개 도시에서 닷새 동안 연달아 '희망콘서트'를 연다. 벌써 11년째다.

희망콘서트의 탄생 배경에는 음악을 좋아하고 치유의 힘을 믿는 김진호 GSK 한국법인 대표가 있었다. "김 대표는 첼로도 연주하는 분이죠.'간염 환자들을 위로하고 마음을 어루만져달라'는 제안을 받고 2000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간염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콘서트'를 해왔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 30~50대 남성 사인 1,2위가 간염일 정도로 심각했어요. 음악으로 간염 환자들의 치료 의지를 높이고 그들의 영혼을 다독여줄 수 있다는 소리에 선뜻 마음이 움직였죠."

콘서트 이름에 희망을 붙인 것은 그 무렵 간염 백신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로소 희망이 생긴 거죠.간염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음악회에 다녀간 환자들이 고마워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제가 행복했습니다. 의사들도 많이 왔어요. 그동안 상황도 많이 좋아졌고 그때보다 환자 숫자도 줄었죠."

이렇게 시작된 콘서트의 누적 관객은 7만명을 웃돈다. 음악을 통한 질병 퇴치 콘서트로는 국내 최장기인 10년 기록도 세웠다. 그는 무대에서 연주만 하지 않고 전체 공연을 기획,감독하고 출연자 섭외까지 한다. 닷새 연속 공연하면서 하루에 한 도시를 옮겨가는 강행군인데도 피곤함을 모른다.

이번에는 간염이 아니라 기아 대책이다. 'GSK와 기아대책이 함께하는 강동석의 희망콘서트'.그는 "이제 기아대책으로 다시 시작했으니까 또 다른 희망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며 "음악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소중하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덕분에 현악이 많아요. 비발디의 '사계'가 많이 알려졌지만 잘 모르고 듣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래서 이 곡에 달린 시로 설명을 곁들이려고 합니다. 악보에는 연주 지시들이 있죠.무슨 장면이고 무엇을 표현하고….이걸 청중에게 알려주면 또 다른 귀가 열리게 되니까 이번에 한번 해보려고 해요. 100번을 모르고 듣는 것보다 한 번 알고 듣는 게 중요하죠.1분 내로 설명하고 한 악장 하기 전에 시를 짧게 읽어주려고 합니다. "

그는 파리에서도 시를 읽고 연주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악장마다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너무 말이 많으면 흐름이 끊기니까 그렇게는 안 하죠.시가 짧아서 다행입니다. 1악장에서는 봄에 새들이 노래하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2악장에서는 양치기가 나무 밑에 쉬고 옆에는 개가 자고 있는 모습,이런 식이죠.비올라를 개소리와 닮았다고 표현하면 제격이지요? 성악은 가사가 있지만 연주회는 그게 없는데 이번처럼 하면 훨씬 더 재미있을 거예요. "

연주회를 다섯 차례,5개 도시에서 하는데 한꺼번에 몰아서 하려면 어려움이 많을 텐데….그는 "1년 전부터 준비한다"고 했다. 그래도 음악이라는 말만 들으면 힘이 난다고 했다. "음악 없는 인생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음악은 인생의 한 부분이고 육체의 한 부분이죠.클래식은 몇 백년 동안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사랑받잖아요. 지루하지도 않죠.레퍼토리가 다양하니까. 실내악 프로그램 중 지금까지 안 한 것도 많아요. 계속 새로운 테두리가 방향을 바꾸면서 발견되는 것 같죠."

요즘 학생들에게 해 줄 얘기도 많은 듯했다. "꼭 전공을 하고 싶다면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음악적 소질도 부족하고 관심도 없는데 억지로 할 필요는 없죠.음악은 무엇보다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기 생각 없이 남들 흐름에 무조건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은데,루이비통 사면 너도나도 사고… 저라면 똑같아서 오히려 하지 않을 거예요. 음악이란 자기 개성,철학으로 승부하는 거죠.창의력을 키우고 열정도 키우고 그렇게 해서 음악이 자기 인생의 한 부분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

그러고 보니 그의 가족들도 열정 덩어리다. 부인은 프랑스인 피아니스트이고 아들은 영화감독을 꿈꾸는 광고맨,딸은 프랑스 그랑제콜을 졸업한 언어전문가다. "서로 다른 것 같아도 묘하게 통해요. 바이올리니스트끼리 사는 것보다 피아니스트와 사는 게 더 좋고,아이들도 동서양 문화와 다국어를 배울 수 있어서 좋고,저는 이렇게 음악에 빠져서 행복하니 또 좋지요. "

만난 사람=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


◆ 10년간 '희망콘서트'…올해부터 저소득층 어린이 도와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 10~14일 서울 등 5개 도시서 열려

강동석 교수는 세계적인 제약기업 글락소 스미스클라인(GSK)과 10년째 '강동석의 희망콘서트'를 열고 있다. 그동안은 간염 퇴치를 위한 콘서트를 열었지만 올해부터는 국제구호단체인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와 손을 잡고 저소득 · 보호대상 어린이들을 위해 'GSK와 기아대책이 함께하는 강동석의 희망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연주회를 갖는다.

10~14일 서울과 지방 4개 도시에서 잇달아 열리는 이번 공연에서 그는 창단 50주년을 맞은 세계 정상의 실내악단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10일 김해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 공연을 시작으로 11일 광주 5 · 18기념문화센터 민주홀,12일 대전 우송예술회관,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14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연주회를 연다.

수익금은 GSK 임직원의 참여로 조성되고 있는 '해피 스마일 펀드' 기금과 함께 기아대책의 지역아동센터인 '행복한 홈스쿨'의 어린이 교육지원과 보호,건강 증진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오후 7시까지만 운영되는 일부 '행복한 홈스쿨'의 운영 시간을 늘리고 집에서 혼자 방치되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프로그램 '별빛학교'를 마련하는 한편 어린이 성범죄 예방과 백신접종 등 건강 프로그램에도 활용된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과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합주를 위한 세레나데 다장조',비발디의 '사계'를 들려준다. 강 교수는 이번 공연을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초대 리더이자 동료이며 음악적 친구였던 이매뉴얼 후르비츠(1919~2006)에게 헌정하기로 했다. 함께 공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파니 곤리는 이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비단결 같은 앙상블과 유연한 표현력,거침없는 소리의 대위법을 만들어내는 리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입장료는 서울 4만~10만원,그 외 지역 3만~7만원.(02)720-3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