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의 하이라이트인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가 지난 9일 미국 워싱턴 IMF본부에서 열렸으나 글로벌 환율전쟁과 관련해서는 이렇다 할 합의점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공동성명문 작성에 당초 예정보다 시간이 더 걸렸으나 성명문에는 환율 문제에 대해 주목할 만한 내용이 없었다. 회의에 참석한 각국 재무장관들 표정도 밝지 않아 보였다. 각국의 입장만 재확인하고 기존 주장만 되풀이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중국을 압박하는 데 실패한 회의라는 평가도 나온다.

◆문구만 요란한 공동성명문

이날 IMF의 공동성명문에 환율전쟁을 해소할 합의내용이 담길지 여부가 최대 관심이었다. 회의 개최 전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총재는 "IMF가 환율 문제를 중재할 최적의 기구"라고 말해 왔다.

하지만 회의가 끝난 뒤 나온 공동성명에서 환율전쟁 해법과 관련한 구체적인 문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계속 협력한다' '인식한다' '중요하다' '강조한다'와 같은 표현만 무성했다. 다만 성명문 행간 곳곳에서 중국이 대표 격인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과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선진국 진영의 적지 않은 신경전이 노출됐다.

성명문은 IMF의 감독의무 강화를 지적하면서 "선진국의 취약성에 대해서도 (신흥국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더욱 엄격하고 솔직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겨냥한 것이다. '외환보유액 문제'를 언급한 대목은 중국을 염두에 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국제수지 적자국과 흑자국의 책임 인식'이라고 에둘렀을 뿐 '위안화'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의 인위적인 위안화 저평가 정책 탓에 무역적자가 커진다고 비난해 왔으나 성명에는 두루뭉술한 표현뿐이었다.

칸 총재는 IMFC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말은 효과가 없다"며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중재자로서의 IMF 한계를 인정했다.

◆미국 지지세 규합에 실패했나

공동성명에 위안화 환율 문제 합의를 적시하지 못한 것은 미국이 지지세력을 모으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미국은 앞서 IMF에서 위안화 환율 문제가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잔뜩 별렀다.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IMFC 회의 직전에 "IMF는 각국의 환율정책과 과도한 외환보유액 축적 관행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중국을 다시 압박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동안) 미국의 큰 소리와 유럽과 일본,다른 국가들의 문제 제기에도 IMF 총회가 중국의 위안화 절상에 의미있는 압력을 행사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애스워 프래사드 코넬대 교수는 "집단 행동은 현실성이 없었고,다만 이상이었을 뿐"이라고 비꼬았다. 중국은 미국의 공격을 쉽게 피한 셈이다.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브라질이 환율 문제를 강하게 거론했으나 나머지 어느 나라도 환율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미국과 중국은 브라질 주장을 경청만 했다는 것이다. 반면 부트로스 갈리 IMFC 의장은 "참석자들 사이에 마찰이 있었다"고 말했다.


◆경주 G20 재무장관회담 주목

그렇다고 미국이 물러설 상황은 아니다. 앞서 가이트너 장관은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도 지지세력을 모아 중국이 환율 시스템을 개선토록 하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다. 짐 플래허티 캐나다 재무장관은 이날 "다음 달 열리는 G20 정상회의가 점증하는 환율분쟁을 해결할 적절한 계기"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G20 재무장관들은 오는 21~23일 경주에서 11월 정상회의로 가는 징검다리 회담을 갖는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제수지 흑자국과 적자국 간 세계 경제 불균형 해소를 위한) 기초를 만드는 과정에서 상호 평가가 있을 것이고,자연스럽게 환율 문제도 거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 정상회의에서 국제 환율 문제를 의제로 다룰 수 있다는 뜻을 지난 7일 밝혔다. IMF 총회에 참석한 다른 관계자는 환율 문제를 놓고 제2의 플라자합의와 같은 '서울 컨센서스'가 나올지 여부에 대해 조심스럽게 낙관론을 내놨다. 그는 "각국이 서로 의존해야 하고,상호 공존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나올 수 있다"고 관측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