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곡물 수출 재개 시점이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고위층마다 엇갈린 견해를 내놓고 있어서다. 러시아의 빅토르 줍코프 제1부총리가 "아직 때가 안 됐다"는 입장을 밝힌 데 반해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곧 재개할 수도 있음을 시사해 국제 곡물 시장에 혼선을 주고 있다.

11일 이타르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총리는 이날 크렘린궁에서 열린 농업 및 농산품 가공산업 근로자의 날 기념행사에서 "올해 러시아의 곡물 수확량과 재고는 국내 수요를 충족시킬 것으로 본다"며 "러시아가 곧 세계 곡물 시장의 리더로 복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예상보다 빨리 곡물 수출을 재개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푸틴 총리는 수출 재개 시기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멀지 않은 장래'라고 언급해 이 같은 관측을 낳았다. 그는 "러시아 곡물 수출업자들은 국제 곡물 시장 복귀에 필요한 잠재력과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정부는 이를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지난 8월 사상 최악의 가뭄과 산불 등으로 곡물 수확량 감소가 예상되자 올해 말까지를 기한으로 곡물 수출을 중단했다.

푸틴 총리가 조속한 수출 재개를 시사한 반면,줍코프 제1부총리는 조기 수출 재개 가능성을 일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는 지난 1일 현지 리아노보스티통신과 가진 회견에서 "내년 7월 이전에 곡물 수출 재개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올해 곡물 수확량이 6600만t수준으로 러시아의 연간 수요인 7700만t에도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곡물 수출 재개 시점을 두고 러시아 정부 내부에서 심각한 이견이나 혼선이 빚어진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러시아 정부는 올해 최악의 폭염과 가뭄으로 피해를 입은 곡물 생산자들을 위해 400억루블(약 1조5000억원)을 지원했으며 내년에도 농업 지원금으로 1250억루블을 책정했다. 지난 6월 이후 국제 밀 가격은 러시아의 밀 생산량 급감 등으로 50% 이상 올랐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